聖人以智籠群愚亦猶狙公之以智籠衆狙也
名實不虧使其喜怒哉
“성인이 지혜로써 어리석은 무리를 농락하는 게
저공이 지혜로써 원숭이 무리를 농락하는 것과 같다”
중국 송(宋)나라에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원숭이(狙)를 잘 기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는 원숭이를 몹시 사랑해서 원숭이를 길렀는데, 기르다보니 무리가 되었습니다. 그가 원숭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원숭이들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었고, 원숭이들도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공(狙公)은 집안 식구들이 먹는 것을 줄여 원숭이들에게 주었는데, 그만 얼마 안 가서 식량이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는 수없이 원숭이들의 먹이를 재한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원숭이 무리들이 자기를 따르지 않을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는 먼저 원숭이들을 달래면서 말했습니다.
“너희들에게 도토리를 주는데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면 충분하겠지?”
원숭이들은 모두 들고 일어나 화를 냈습니다. 그는 조금 있다가 다시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개 주면 충분하겠니?”하고 묻자, 원숭이들은 모두 엎드려 절하며 좋아했습니다.
「장자(莊子)」에도 실려있고, 「열자(列子)」에도 실려 있는 조삼모사(朝三暮四) 이야기인데, 열자(列子)는 이 이야기 끝에 세상에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을 농락하는 게 모두 이와 같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인이 지혜로써 어리석은 무리를 농락하는 게 저공이 지혜로써 원숭이 무리를 농락하는 것과 똑같다. 명분과 실질을 해치지 않고, 그들을 기쁘게도 하고 화나게도 할 수 있다.(聖人以智籠群愚亦猶狙公之以智籠衆狙也名實不虧使其喜怒哉)
저공(狙公)의 교활함으로 어리석은 원숭이를 속이는 오늘날 정치판과 똑같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조삼모사는 교활한 성인이 어리석은 민중을 속이는 이야기일까요?
아닙니다. 조삼모사는 그런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우선 저공은 결코 교활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어떤 권모술수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루에 일곱 개라는 전체 총량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그가 몰래 하나를 빼먹어서 여섯 개로 줄었다면 나쁜 짓이지만, 일곱 개를 고스란히 유지했습니다. 다만 원숭이들에게 복지 향상을 위한 방법을 물었을 뿐입니다. 게다가 그는 원숭이들에게 충분한 발언권도 주었고, 원숭이들이 반대하자 그들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게 어떻게 권모술수입니까? 오히려 그는 원숭이들 말에 귀를 기울인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정치지도자들은 어떻습니까? 국민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국민이 하지 말라는 것을 끝까지 강행하면서 국민을 기만하려 듭니다.
총량 일곱 개에서 하나를 빼먹는 것은 요즘 정치인들입니다. 그들과 저공을 비교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것은 저공(狙公)을 모욕하는 일입니다.
심우석 관광학 박사, 전주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