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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봉환 요구 저의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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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봉환 요구 저의가 무엇인가
  • 전민일보
  • 승인 2015.04.13 1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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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도 군수 유골봉환 직접 요구
- 3번이나 봉환기회 스스로 포기
- 또 부끄러운 후손들이 돼서야

이동진 전남 진도군수가 김승수 전주시를 만나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미 동학농민군 완산전투지 안장과 역사공원 조성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뒷북이 아닐 수 없다.

진도군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세 차례에 걸친 진도지역 유골 안장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서 이동진 진도군수의 요구는 억지를 떠나 뻔뻔함까지 묻어난다. 비록 단체장은 바뀌었지만 행정은 연장선상에서 논의돼야 하기 때문이다.

진도군이 내부적으로 작성한 유골안장에 따른 대책 보고서상 ‘추진경과’를 살펴보면 잘 드러난다. 1996년 5월 국내로 유골이 봉환된 이후 추진 일정이 표기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5년 9월 유골봉환을 위한 학술연구와 용역을 완료했다고 명시했다.

동학농민기념사업회는 2001년부터 진도군과 협의를 진행했다. 이후 2003년까지 유골 안장을 위한 협의를 진행했지만 진도군의 추진 의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농학농민혁명특별법이 2004년 제정됐다. 이후 지난해부터 세계기록유산 등재까지 추진되고 있다.

진도군도 갑자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다.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은 과학적·역사적으로 진도출신이라는 근거가 전혀 없다. 그 동안 DNA 분석 등 여러 조사가 이뤄졌지만 너무 오래된 탓에 근거를 밝혀 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진도군이 진도유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진도지역에서 효수됐다’는 유골에 쓰여 진 문구 때문이다. 진도지역의 유골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당시 농학농민군들은 일본군에 밀리면서 진도까지 내려가 최후의 항전을 했던 시기이다.

전국 각지의 동학농민군들이 진도지역에서 배수진을 치고 전투를 벌이다가 무수히 희생됐다. 이런 역사적 사실여부를 떠나 지난 20년간 진도군은 유골 안장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그간 기록을 통해 드러난 확실한 팩트이다.

진도군은 유골봉환의 취지로 ‘진도출신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을 되찾아 농민봉기에 앞장선 동학농민군을 기념하고, 농민혁명 거점으로서 진도의 위상 정립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120년 전 일본군에게 희생된 무명의 지도자 유골의 영혼을 달래고, 동학농민혁명의 의의를 후손들에게 알리기보다는 ‘역사공원 조성’과 ‘진도의 위상 정립’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또 다시 부끄러운 후손들 탓에 무명의 동학군 지도자는 아직도 영면하지 못하고 있다.

기념사업회와 전주시는 2월 화장 및 안장식까지 준비했는데 진도지역의 반발로 무기한 보류된 상태다. 120년간 영면하지 못한 영혼을 이제는 달래줘야 한다. 지역의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부끄러운 후손들로 우리 모두를 만들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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