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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生, 美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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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生, 美生
  • 전민일보
  • 승인 2015.03.06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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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수필가·본보 독자권익위원회

 
근래에 <미생>이 단연 화제다.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을 보며 서민이 미생으로 살아가는 현실에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도 든다. 그러나 요즈음 바둑을 배우고 있던 터라 일과 사회를 바둑인 특유의 시선으로 관통하는 과정에 반가움이 더 크다.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이라더니 참말이었구나, 무릎도 곧잘 치게 된다.

그러고 보면 바둑에서 인생을 배우게 되는 일이 많다. 바둑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내 관심사는 오직 ‘대마’에 있었다. 고것 하나만 잡으면 될 것 같은 눈앞의 떡이 바로 대마였다. 대마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 대마잡는 재미에 빠져 그저 대마를 잡으러 다니기만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대마라는 것이 만만치가 않았다. 하수들에게는 곧잘 통했지만, 고수들에게는 내 대마 쫓기가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대마를 맹목적으로 쫓다 오히려 잡으러 가던 내 돌들이 대마가 되어 죽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대마불사! 대마는 죽지 않는다더니 고수들의 대마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마라는 한탕의 유혹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기회, 쉬워 보이는 한탕의 유혹은 차라리 합리적인 방법으로 생각되기까지 했다. 대체 이 대마를 두고 우직하게 자신의 집을 키워가기만 하는 바둑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수없이 대마를 쫓다 여러번 실패를 맛본 다음에야 그러한 고수들의 바둑 두는 수가 눈에 들어왔다. 고수들의 바둑은 달랐다. 그들은 대마를 쫓지 않았다. 쫓는 듯 보이다가도 어느새 집을 짓거나 이득을 만들어 이기곤 했다. 대마를 잡는 것만이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마를 잡는 것보다 자신의 집을 키워나가는 것이 더 쉽게 이기는 길이라는 훈수도 있었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고 했던가. 남을 공격하기 전에 나를 공고히 살피는 것, 상대의 대마에 연연하기 전에 내 약점을 보호하며 집들을 지켜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패전을 겪고 나서야 어쩌면 이 당연할지 모르는 인생의 진리를 바로 보게 되었다. 결국 나는 대마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더 즐겁게 바둑을 둘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는 중앙에 진출해서 큰 집을 만드는 데 몰두하기도 했다. 언뜻 중앙이 넓어 보이고 큰 집을 짓기에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다. 중앙을 갖겠다는 마음으로 아예 처음부터 포석을 중앙을 위주로 짠 적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쉽지 않았다. 중앙을 점령하고 있는 내 돌들은 언뜻 호방해보였으나 그야말로 실속이 없었던 것이다. 중앙의 돌로 집을 만들어 내는 것이 쉽지 않았음은 물론 대국 전체를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나와 같이 중앙에서 시작하는 사람은 없었다. 중앙은 사방으로 뚫려있다 보니 나에게 열려있는 만큼 상대에게도 열려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바둑을 배우며 가장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중앙보다는 변이, 변보다는 귀가 오히려 완생의 모양을 갖추기에 용이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고수들은 포석을 짤 때 귀에서부터 시작한다. 그저 무턱대고 중앙을 노리는 일도 없다. 귀에서부터, 변에서부터 시작해서 차곡차곡, 미생으로 몰리지 않고 집을 키워 안전하게 중앙 진출을 한다.

그래서 중앙으로 가려는 뜨거운 경쟁의 길은 미생으로 향하는 가능성이 더 많은 길이라고들 한다. 우리들 인생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모두가 중앙으로만 가려하고 그것만이 성공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경쟁에서 이긴다고, 또 밀렸다고 해서 그것이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처럼 좌절하거나 일희일비하는 것이 인생의 모습이다. 변으로, 귀로 밀린 자신의 상황을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바둑에서도 그러하듯이 귀는 오히려 미생으로 몰릴 위험이 적어 중앙으로 가는 훌륭한 디딤이 되기도 한다. 오히려 재대국이 없는 인생에서는 더욱 그렇다. 판을 새로 짤 수도 없는, 그래서 새로운 대국의 기회조차 없는 한번뿐인 삶이라면 귀를 기회로 삼아 그곳에서의 완생의 길을 찾는 것이 오로지 중앙의 호방함만을 쫓는 것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마도, 중앙도 우리에게는 화려하고 멋진 완생의 이상향일 수 있다. 이상이라는 유토피아는 눈앞의 환상으로 유혹할 수도 있고, 패배와 좌절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마는 잘 안 죽으니까, 한탕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니까 대마 잡으러 가지 말고, 한탕을 노리지 말고 소신껏 자신의 길을 믿고 가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은 있는 법이니까.

지금은 미생일지라도, 완생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는 삶이 아름다운 美生임을, 오늘도 바둑 한 수를 두며 인생을 사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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