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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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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 풍경
  • 전민일보
  • 승인 2015.03.0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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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남 수필가

 
시골의 오일장은 뭐랄까, 풀솜할머니 같다. 봉창 깊이 가무려 넣은 손주의 주전부리처럼, 좌판 여기저기 알맞은 영역만큼 잡다한 물건을 풀어놓았다.

春風 맞은 남새, 묵은 곡식, 봄 병아리, 뻥튀기, 모양 없이 몫 지은 해산물 그리고 교태 품은 봄꽃들. 나도 좌판을 서성이는 촌로들 사이를 기웃대다 엄동에 삿대질 하듯 화사하니 피어난 봄꽃앞에 발이 머물렀다.

아무렴 봄은 역시 꽃이지, 이리저리 꽃 상자를 뒤적이다 얼굴이 가무잡잡한 사내가 어렵사리 고른 꽃분을 들고 해사하니 웃는 모습이 하도 정다워 나도 같은 꽃분을 집어 들었다.

막 자리를 옮기려던 사내가 동지라도 만난 듯 다가와 투박한 흙의 언어로 꽃 정보를 일러주는데 나는 거친 손에 든 그 꽃을 받을 주인이 누구일지 궁금했다. 세속의 관념과 위선을 털어내고 사는 사내의 자유로움이 신중하고 성실한 가장일 것만 같아 내 마음이 다 뜨끈해졌다.

훠이훠이 사내가 사라진 자리, 털이 뭉그러진 겨울 신을 걸친 백발의 안노인이 틀니가 빠지도록 환히 웃으며 곁을 둔다. 말하지 않아도 소통이 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문장이던가, 그 웃음을 따라 情이 소리 없이 몰려나와 오래도록 안노인의 벗이 되기도 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도시에서 완곡히 세웠던 위대한 격이 무너지는 순간이 시골의 장터라니, 그리 소중히 여겼던 격이 이토록 하잘 것 없는 것이라니, 위대함은 지식이나 힘, 권력이나 재력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닌가 보다.

소박하고 가난하나 순리에 따르며 사는 그들이야말로 위대한 무엇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본색을 덧칠한 내 얼굴이 다 붉어 온다.

꽃분을 들고 난전을 기웃대다 봄의 백미인 나물세 앞에 바싹 다가앉았다. 그녀의 텃밭에서 분주히 가무려온 봄 남새에서 촌내가 진동한다. 더러 검불이 묻어나고 흙이 데분데분 해도 깔끔하고 가지런한 도시의 남새에서 느끼지 못한 인간미가 물씬 풍겨 헤프게 농지거리를 했다.

내 행동이 어찌나 적극적인지 남새를 주무르던 아낙이 어색한 듯 피식 웃음을 날리더니 머윗잎 모퉁이를 당겨 주섬주섬 비닐봉지에 담아내게 건넨다. “이천 원만 줘, 요샛날 젤로 보약이제” 젬병이인 내가 봐도 도시의 가게에선 몇 배 더 달라했을 양이어서 그녀의 오달진 마음이 따지듯 살아온 내게 던진 말 없는 행위 교육만 같아 저절로 수굿해진다.

다리가 저리다는 핑계로 엉덩이를 치올리고 일어섰다. 내 시선을 따라 눈을 홉뜬 그녀가 낯가림 없이 활짝 웃는다. 서둘러 오느라 닦지 못한 치아 사이의 고춧가루가 붉게 피어오른다. 마치 고운 聖心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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