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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백세청풍(百世淸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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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백세청풍(百世淸風)
  • 전민일보
  • 승인 2014.12.1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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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록 칼럼니스트

 
방금 지나온 곳을 되돌아 가보면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다. 그렇다. 때론 사진 한 장이 화려한 동영상 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제국주의 시대 약소민족이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을 유지한 사례는 거의 없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해석은 다르다. 그것은 성패 이전에 민족정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국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진 선열들을 찾아 명예를 높이고 그 후손들을 돌봐야 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한 개인이나 가족에 대한 예우차원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우리와 미래를 살아갈 후손의 존립 근거이기 때문이다.

금구 서강사(西岡祠)에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 자리하고 있다. 오래도록 부는 맑은 바람과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맑고 높은 절개를 상징하는 말이다.

그곳엔 일유제(一遺齊) 장태수(張泰秀) 선생이 모셔져 있다. 선생은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해 일제(日帝)가 소위 은사금을 가져오자 일경에게 호통을 쳐 내쫓는다. 계속되는 일제의 회유와 협박 앞에서 그가 택한 것은 순국(殉國)이었다.

선생이 남긴 마지막 말이다. “내가 두 가지 죄를 졌다.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없는 데도 적을 토벌하여 원수를 갚지 못하니 불충(不忠)이요, 이름이 적(敵)의 호적에 오르게 되는 데도 몸을 깨끗이 하지 못하고 선조(先祖)를 욕되게 하였으니 불효(不孝)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이 같은 두 가지의 죄를 지었으니 죽는 것이 이미 늦었다.” 결국 27일간의 단식 끝에 순절한다. 호남의 좌박우장(左朴右張) 서도장씨(西道張氏) 가문에 사간원 대사간, 시종원 부경까지 역임한 고관이었지만 그가 순국한 곳은 초가(草家)였다.

바로 남강정사(南崗精舍)다. 그런 선생이 순국하기 전 한 아이에게 가문과 조국의 미래를 위한 당부의 글을 남기는데 그가 종손(宗孫)인 일송(一松) 장현식(張鉉植)이다.

일송은 일유제의 유지를 이어 독립운동에 헌신한다. 약관의 나이에 3·1운동에 참여하지만 일제의 회유와 협박은 일송에게도 계속된다. 일제의 주구인 소위 자성회(自省會) 참여를 강권당한 것이다.

이에 그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적인 인연을 갖게 된다. 바로 전협(全協)과의 만남이다. 전협은 비밀결사 대동단(大同團)의 핵심인물이었다. 전협에게서 대동단의 취지와 목적을 설명들은 일송은 거금 3천원을 이건호에게 교부한다. 결국 이 일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다. 그가 재정을 담당한 대동신문 역시 독립운동을 고취했다는 혐의로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된다.

당시 시가 17만원 상당에 달했다는 그의 만석꾼 재산은 해방 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재산은 상해임시정부는 물론 청년인재 양성과 언론을 통한 독립정신 고취라는 목적아래 고려대학교와 동아일보사 설립에도 사용된다. 일송이 일제에 의해 마지막으로 투옥되는 사건이 유명한 ‘조선어학회사건’이다.

그는 조선어사전 편찬자금으로 3천원을 제공하는데 결국 이 사건으로 해방될 때까지 함경도 홍안 경찰서에 수감된다. 이때 일경은 일송의 혀에 대못을 박는 고문을 자행하는데 이 일로 그는 여생을 말더듬이로 살아야 했다.

해방 후 전라북도 2대 도지사에 취임했지만 대쪽 같은 성격은 그를 백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 후 6·25직전 치러진 민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한다. 그때 일부에서 그를 조롱하며 나온 말이 ‘말 못하는 장현식’이다.

독립과 한글을 위해 당한 고문으로 얻은 영광스러운 장애가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순간이다. 낙선한 그는 명륜동에서 6·25를 맞게 되는데 이 때 김일성이 직접 지시한 ‘모시기 작전’대상에 포함돼 납북된다.

그는 현재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등과 함께 평양 재북 인사묘역에 잠들어있다. 대한민국 정부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일송은 남과 북 모두에서 인정받는 많지 않은 애국지사 중 하나다. 일유제에게 헌사 된 백세청풍은 그의 삶에도 유효하다. “가장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논(Zenon)의 질문에 대한 신의 대답은 이렇다. “죽은 자들과 어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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