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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친우문(弔親友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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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친우문(弔親友文)
  • 전민일보
  • 승인 2014.10.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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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록 농촌지도사

 
한국 사회에서 고등학교 동기동창은 특별하다. 시간이 흘러 중년이 돼도,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차이가 생겨도 편하게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관계다.

물론, 우정의 대상도 불변의 존재는 아니다. 사람의 관계 역시 고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정립은 불가피하다. 그것이 없다면 난 언젠가 혼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끊임없는 관리와 보수가 필요한 것은 우정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일까. 오래 전친구를 만났을 때 그 반가움이 순간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서로 살아온 상황과 배경이 상이하면 본뜻과는 별개로 서먹함이 자리를 차지하고 만다. 때론 친구에 대한 호의조차 번지수를 잘못 찾는 경우 역시 그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늦은 나이에 미관말직(微官末職)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나를 보면서 의아함 반, 걱정 반의 맘을 담아 이런 얘기를 해주는 친구도 있다. “아무개가 어느 자리에 있으니 너 얘기 좀 해주겠다.”친구의 맘은 감사하나 그가 내게 그런 얘길 하는 자체가 그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간격을 말해주고 있다. 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 뿐이다. 거기에 무엇인가를 더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이미 순수함을 넘어선 또 다른 영역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난 내 삶을 살 뿐이다. 친구는 그 삶에서 나와 호흡을 같이할 대상이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에서 우정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아 있으면 우정의 진심을 알게 되고(一死一生, 乃知交情), 한 사람은 가난하고 한 사람은 부유하면 우정의 태도를 알게 되고(一貧一富, 乃知交態), 한 사람은 출세하고 한 사람은 천하면 우정의 진정성이 나타난다(一貴一賤, 交情乃見).”

난 살아있고 친구는 떠났다. 바다로 떠난 친구를 이제 어디서 봐야할지 막막하다. 아프다.

난 친구와 전주고등학교 3년을 같이 다녔지만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대학에서도 서로 볼 일이 없었다. 전북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나와 고려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친구사이에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친구와 난 고등학교 친구라기 보단 고등학교를 매개로 만난 새로운 친구에 가까울 것이다. 언젠가 친구가 내게 “난 널 참 좋아하지만, 너와 나 사이엔 추억이 없다.”라 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 보다 더한 애정이 어디 있겠는가. 그 말이 너무도 고마웠던 난 예산(禮山)에 찾아온 친구와 소주잔을 나누며 이렇게 얘기했다. “이제 너와 나 사이엔 추억 하나가 생겼다.”

난 친구보다 부유하지도 않고, 출세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사마천이 얘기한 우정의 태도와 진정성을 논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친구가 떠나고 난 살아 있으니 사마천이 얘기한 ‘우정의 진심’을 얘기할 순 있다. 너무도 애통하고 허전하다. 3개월 전 처음 소식을 접하고 ‘제발 아니길..’바랬던 마음이 절망으로 변해갈 때도 친구는 의연했다. 하지만, 나는 소식을 듣는 것이 두려워 다른 친구에게 먼저 연락해 안부를 물었다. 정작 죽음이 두려웠던 것은 친구가 아니라 나였던 것이다. 영원히 친구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친구가 하늘로 떠나기 열흘 전 병상에 있는 그를 만났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바람을 쐬고 싶다며 병원 현관 벤치에 내려와 앉은 친구는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는 내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자신이 아닌 내 삶을 걱정하는.. 따스했던 그 손길은 한 줌 재로 내 손에 닿아 바다로 떠나갈 때도 여전했다.

친구는 내가 없을 때 나에 대한 얘길 많이 했다고 한다. 그 얘기들을 생각하면 비통함은 더해만 간다.

백아절현(伯牙絶絃)을 얘기 할 만한 친구 문칠곤을 궁항 앞바다에 그렇게 떠나보냈다. 칠곤아! 널 잊지 않으마.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그날 소주 한잔 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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