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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해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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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해를 보내며…
  • 전민일보
  • 승인 2009.12.10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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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저문다. 12월의 벼랑 끝에 오로라처럼 펼쳐진 해거름 속으로 기축년(己丑年)이 노을빛으로 기울어가고 있다. 고난과 시련의 서러운 눈물들이 잠시도 마를 새가 없었던 2009년. 매년 연말이면 ‘다사다난 했던 한 해’라는 표현을 쓰지만 열두 고개를 힘겹게 넘은 지금 지난 한해를 뒤돌아보면 복잡함과 아쉬움만 남는다.
  무엇보다 정치, 경제, 사회, 국제관계 등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마무리 된 것은 없고 그저 꼬이고 뒤틀어져 시작과 끝을 찾기조차 어려운 형국에 처해 있는 게 현실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며 지는 해를 바라보면 밀레의 ‘만종(晩鐘)’이 떠오른다. 하루의 일과를 끝낸 농부 부부가 황혼이 지기 시작한 전원을 배경으로 삼종기도를 바치고 있는 모습은 자연을 향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지금 하루의 일과를 끝낸 농부가 황혼 빛을 받으며 기도하는 것처럼, 한 해의 저물녘에서 황혼 빛을 받고 서 있다. 다시 가는 한 해, 기축년(己丑年)은 그 긴 그림자를 남기며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이제 황혼이 지기 시작한 세밑의 한 귀퉁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며 기도할 것인가. 신석정은 서녘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니’라고 기도했다.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고 합니다./(중략)/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정녕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닌가. 언제나 한 해를 마감할 때쯤이면 회한만이 남는다. 큰 기대와 희망을 안고 시작한 2009년이었지만 어느 덧 한해의 저물녘에 이르니 가슴만 아려오고 정녕 이 해도 황혼 속에 메아리처럼 긴 그림자를 남기며 사라져가고 있다.
  쉼 없이 가는 게 세월인가 무상인가. 나(生)고 죽(死)고 흥하고, 망함이 덧없음을 일컬어 흔히 인생무상이라고 하던가.
  세월은 시작도 끝도 없이 강물처럼 성성이 흘러간다. 세상만사는 변화하고 인생은 무상하다. 이봉주처럼 달리기를 잘 해도 죽음을 피할 수도 없고, 수영선수 비온디처럼 헤엄쳐 물속으로 들어가도 숨을 수도 없다. 세상을 움직이는 권세도 무용하며, 말 잘하는 변호사도 설득할 수 없고, 당대 최고의 바람둥이이자 억만장자인 오나시스도 저승으로 떠났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생사는 숨 한번 내쉬고 들이 쉬는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하셨다. 
  참으로 인생무상 세월무상이다. 세월 앞에서는 장사도 없다. 그 누구도 세월 속에 녹아 흐른다. 모든 사람의 삶은 세월을 통하여 줄달음치다가 결국 소멸한다.
  인생무상 (人生無常)이란 매우 심오한 말이다. 이는 유(儒),불(佛),선(仙) 삼교(三敎)를 깊이 이해해야 하며, 특히 불가(佛家)의 가르침에 있어 큰 깨달음을 얻어야 얻을 수 있는 내용이다.
  누구든 삶을 살아가는 데 항상(恒常)된 것이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육신이 변화하고, 세상의 물체들과 사물들이 변화한다. 말하자면 삼라만상이 다 변화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이 세계를 지켜보는 정신 또한 변화한다. 왜냐면 어제의 생각을 가졌던 내가 오늘의 생각을 가진 나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화가 계속되는 현상계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인생은 항상 된 것이 없다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옷도 낡아서 버려야하고 음식도 먹으면 없어지고 돈도 쓰면 없어진다. 그리고 나이 들면 병들고 육신을 버리고 저 세상으로 가게 된다. 
  인생이 늘 자기경계를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인생이 짧다는 것에 의해 스스로가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누구든 이 세상에 살아야 할 날수를 알고 산다면, 정말 하루하루가 귀한 날들이며, 가치 있는 시간들로 생각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2009년은 우직하게 일하는 소의 해였다면 2010년은 용맹성을 상징하는 호랑이해다. 2010년 경인년(庚寅年)엔 우리 모두 호랑이처럼 으르렁대며 사납게 살아가자.

신영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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