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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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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기념하며…
  • 전민일보
  • 승인 2017.04.1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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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여러모로 생동의 달이다. 일교차가 심해 쉽게 두꺼운 외투를 벗지 못했던 날들이 지나 비로소 4월이 되니 길마다 하나둘 노란 개나리, 소박한 매화꽃이 꽃망울을 터뜨려 활짝도 피었다. 차디찬 바람을 이겨내고 마침내 꽃을 피운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과 닮았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일제에 의한 국권피탈 뒤 우리민족은 일본의 무단통치와 경제수탈 속에서도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전개해 왔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은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우리의 독립역량을 한데 모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해방운동을 전개할 필요성을 느꼈고 연해주에서는 대한국민의회 결성, 상해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에서는 전국 13도의 대표가 모여 한성정부가 수립되었다.

다시 이를 통합하여 대표할 수 있는 임시 정부 수립을 위한 결과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명칭을 따른 통합 임시 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27년이란 기나긴 기간 식민지 해방운동을 주도한 조직으로서 입법, 사법, 행정이 분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공화정부로서 역사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활발한 행동을 펼치며 범민족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임시정부는 1940년 9월에 광복군을 창설하여 김구 주석의 지휘 아래 총사령에 지청천, 참모장에 이범석을 중심으로 광복 때까지 무장부대로 활동했으며, 이 무장부대는 미얀마 지역에 파견되어 유엔군 일원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국가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것이다.

한편, 임시정부는 외교연구위원회를 설치해 꾸준한 외교 정책을 수행했고 1943년에 이르러 독립신문을 충칭판으로 속간하였다. 이같은 외교 활동으로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문제가 정식 승인되었고, 1945년 포츠담 선언에서 이것이 재차 확인되는 성과를 얻게 된다.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35년이라는 길고 긴 일제 강점기를 종식시키고 자주 독립을 이뤄낸다.

헌법에 명시되길‘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우리의 정체성이기에 국가보훈처에서는 매년 4월 13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임시정부수립기념식 행사를 개최한다. 정부주요인사와 독립유공자 및 유족, 각계대표 및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서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나라사랑정신을 상기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정옥 전북동부보훈지청 보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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