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되면 인력을 투입해 살처분 후 매몰하는 정부의 대응매뉴얼에 대한 비난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벌써 3000여만 수의 가금류가 살처분 됐다. 이중 대부분은 AI에 감염되기 이전에 예방적 차원에서 처분됐기에 더욱 안타깝다.
한국과 같은 시기에 H5N6형 AI가 발생한 일본의 경우 100만수만 살처분 되면서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 커지고 있다. 어수선한 시국상황의 영향도 있겠지만, 일본은 야생조류 분변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자마자 심각단계 격상과 함께 아베 총리가 진두지휘 했다.
한국에서 AI 피해가 발생한지 어느덧 1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정부의 대응은 살처분이 사실상 유일했다. 살처분 대응도 허술했다. 일본은 즉각적으로 자위대를 투입해 신속하게 살처분과 매립작업을 완료해 확산을 저지했다.
한국의 실상은 군대에 자녀를 보낸 부모들의 항의로 지난 2011년 이후 군 인력 투입은 방역 등의 제한적인 간접지원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급속하게 확산되자 일부 간부병력중심으로 투입했지만 이미 확산될 때로 된 시점이었다.
9일째 전북지역에서 AI 발생신고가 접수되지 않고 있다. 국내 3대 산란계 집산지인 김제 용지에서 AI가 발생하자 방역대 3km이내 농가에 대한 대대적인 예방적 살처분이 진행됐다. 이후 김제에서 추가 발생은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AI발생 초기에 정부가 일본처럼 신속한 대응력을 보여줬다면 3000만수의 가금류가 땅에 묻히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사후약방문식으로 매일 전국시도 AI대책회의를 실시하고 있지만 그야말로 뒷북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과 일본의 또 다른 특징은 사육환경이다. 국내 축산법은 산란계 기준 닭 1마리의 최소 사육 면적을 A4 용지(0.062㎡) 한 장도 되지 않는 0.05㎡로 규정하고 있다.
성냥갑을 쌓아놓은 형태의 케이지에 닭을 가둬 1㎡당 20마리 가까이 살고 있는 셈이어서 AI가 발생하면 삽시간에 퍼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동물복지농장 인증을 받은 농가에서는 AI발생 신고가 충남에서 단 한건이 유일했고, 전북은 전혀 없었다.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 수십만 마리를 몰아서 키우는 한국식 밀식사육환경에 대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13년의 안일한 대응에서 비롯된 정부의 무능한 AI 대응 시스템은 국가적 낭비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개선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