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哉史魚邦有道如矢邦無道如矢
“곧구나, 사어는!
나라에 도가 있어도 화살처럼 곧고
나라에 도가 없어도 화살처럼 곧구나”
사어(史魚)는 춘추(春秋)시대 위(衛)나라 대부(大夫)로, 이름이 추라고도 하고 타이라고도 하며, 자는 자어(子魚)라고도 하고 사추(史鰍)라고도 부릅니다.
위(衛)나라 영공(靈公) 때 사직신(社稷神)에 대한 제사를 책임지는 축사(祝史)를 지냈기 때문에 축타(祝?)라고도 불립니다.
오(吳)나라의 연릉계자(延陵季子)가 위나라를 지나갈 때 위나라의 군자(君子)이자 주석(柱石) 같은 신하라고 칭찬했던 인물이기도 했던 그는 사어(史魚)의 시간(屍諫)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위나라 영공(靈公)이 현자인 거백옥을 등용하지 않고 못난 미자하(彌子瑕)를 중용하자, 영공에게 달려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간언합니다.
영공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고, 그런 와중에 사어가 병들어 죽게 되자, 아들에게 유언으로 이렇게 시킵니다.
“내가 위나라 조정에 있으면서 거백옥을 들어 쓰지 못하고, 미자하를 물리치지 못했다. 이는 내가 남의 신하가 되어서 임금을 바로잡지 못한 것이다. 살아서 임금을 바로잡지 못했으면 죽어서 예를 다해 장례를 치룰 수 없으니, 내가 죽거든 나의 시신을 들창 밑에 두고 그것으로 끝내라.”
「예기(禮記)」에서 사람이 죽으면, 들창 아래에서 밥을 올리고, 집안에서 소렴하며, 동편층계에서 대렴하고, 손님 자리에 빈소를 차리며, 마당에서 길제사 지내고, 무덤에서 장사지내 먼 곳으로 떠나보내는 게 예(禮)라고 했습니다.
시신을 들창 아래 두는 것은 예가 아닌데, 사어는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자신의 장례는 예에 맞게 치를 수가 없다는 것인데, 사어의 아들은 예에 맞는 일이 아니지만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따랐습니다.
영공이 조문을 와서 보고 이상해서 사어 아들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사어의 아들은 자기 아버지가 한 말을 영공에게 그대로 전합니다.
사어의 말을 전해들은 영공은 몹시 놀라는 얼굴빛으로 “이것은 과인의 잘못이다.”고 말하면서, 손님이 오는 자리에 빈소를 차리라고 명령합니다.
조문을 마친 영공은 궁궐로 돌아가 곧바로 거백옥을 불러 임용하고, 미자하는 물리쳐 멀리 보냈고요. 공자는 그런 사어를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곧구나, 사어는! 나라에 도가 있어도 화살처럼 곧고, 나라에 도가 없어도 화살처럼 곧구나.(直哉史魚邦有道如矢邦無道如矢)
얼마나 곧으면 죽어가면서까지 간언(諫言)할까요? 그런 사람이 하나만 곁에 있으면 참으로 든든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