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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내 마음 속의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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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내 마음 속의 갑질
  • 전민일보
  • 승인 2014.12.18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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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섶 문화비평가

 
우리 사회를 더럽히는 또 하나의 키워드, ‘갑질’이다. 갑질이라는 말이 더럽힌다는 게 아니다. 갑질하는 자들의 포악한 언행이 갑질당하는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존재감 비하시키며 사회를 더럽힌다는 뜻이다. 특정한 구조적 관계에서는 갑질당하는 사람들은 개기지도 못한다. 개기다간 구조 밖으로 퇴출당하는 처지가 되니깐.

한국으로 들어오려 미국 공항에서 이륙하던 비행기가 회항당해 공항에서 을씨년스럽게 쫓겨난 사람, 그는 다름아닌 그 비행기의 기내 안전과 서비스를 책임져야 할 사무장이다. 오너 일가의 망나니 같은 조직문화가 워낙 권력인데다, 한 명의 승객에 불과함에도 핏줄 부사장이라는 엄연한 지위가 명령하는 추상같은 분노가 계셨으니 어찌 감히 개길 처지였으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면 그는 비정상적인 갑질노름에 바로 잘렸을 게 아닌가. 이런 세계의 갑질은 그야말로 노름판의 갑질이다.

“여기 청소하시는 분 계십니까. 여자 화장실 청소 한번 다시 해주시죠." ×전 부사장의 동선 파악을 위해 이곳저곳을 살피던 ×××× 관계자가 건물 경비원에게 말했다. × 전부사장이 쓸지 모르니 다시 한번 확인을 해달라는 거였다.

그 순간에도 기자와 여직원 서너 명이 이 공용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었다. 5평 남짓 정도로 작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화장실이었다. 청소 아주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불려나와 다시 일을 하고 돌아갔다.

엊그제 한 신문사 기자가 전한 생생한 내용 그대로다. 국토교통부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 그 전 부사장이 조사를 받으러 출두하기 직전, 해당 건물 2층에서 벌어진 일이란다.

오너 일가의 갑질에 이은 그 회사 관계자의 갑질이다. 그 회사의 조직문화는 갑질하는 문화가 특징인가보다. 게다가 자기네 회사건물도 아닌, 조사받으러 간 주제에 남의 집에서 갑질이다. 세상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어 시끌시끌한 판에도 갑질은 계속되고 있으니 갑질 향유자들은 도대체 문제의 본질을 알턱이 없나보다.

오늘의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규정들이 많다. 위험사회, 분노사회, 감시사회, 과로사회, 승자독식사회, 무한경쟁사회... 이제 ‘갑질사회’라는 게 나올 때가 되었나보다.

그러나 갑질사회는 또 하나의 명명인 것이 아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기분 더러운 관계로 당연시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심각성이 있다. 갑질이라는 게 정당하게 치부되고, 나아가 그게 갑질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자연스러운 일로, 갑질하는 행태를 당당한 권리로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사회는 썩어간다.

저 윗분들의 갑질은,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도덕성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더 이상 말할 바도 아니거니와 이미 많은 분노를 사왔다. 권력관계, 돈관계, 힘의 관계 등 다양한 관계들의 경로에서 여차하면 삐지고 나오는 게 갑질이다.

문제는 우리 안의, 내 마음 속에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두얼굴로 존재하는 소름끼치는 갑질이다. 저 위에서만 아니라 이 바닥에서도 갑질은 횡행한다.

여기서는 갑질을 당하는 처지이다가 저기 가서는 갑질을 행사하는 주도자가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일하는 현장에서는 기분 더럽게 갑질당하고 돈을 가지고 무언가를 소비하는 장소에서는 기세등등하게 갑질하며, 그러면서 친구들하고 술 마실 때는 자신이 갑질당한 꼴을 못참아 한다. 여기서 뺨 맞고 저기서 화 푸는 꼴이다. 갑질에 쪄들어가는 보통 사람들의 자기성찰이 없다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더 미개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저 윗분들의 갑질을 비난할 근거도 사라진다.

갑질을 권하는 사회,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왔다. 위험사회가 그렇게 만들었고 분노사회가 그렇게 만들었고 감시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과로사회가 그렇게 만들었고 승자독식사회가 그렇게 만들었고 무한경쟁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민주화라는 삶의 과정을 상실하면 갑질은 더 기승을 부리는 듯 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거늘, 저 맨 꼭대기에서 분탕질해대니 그 아래야 뻔한 꼴이 아닌가. 그래서 사회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나가느냐가 중요해진다. 니체의 초인을 기다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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