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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와 화장지이용미 전북문화관광해설사·행촌수필문학회장
전민일보  |  jmi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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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11  1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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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에 올랐다는 갖가지 사건과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듣는다. 논란거리나 끝장나는 것이 훤히 보이는 상황을, 위기 때면 도망갈 수 있는 파리만도 못한 음식재료들에 비유한 말. 그 위에서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칼인데도 사람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도마다. 그 칼에 같이 베이고 찍히는 도마는 그러나 말이 없다. 칼의 휘둘림을 그저 묵묵히 견디며 나뉘고 부서지는 그것들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그래서 오랜 연륜과 경험이 쌓여갈수록 상처 또한 깊어지는 도마.

그런 도마 한 개를 올 초 내가 내게 선물했다. 물론 그런 여러 의미를 생각하며 한 것은 아니다. 오래 동안 사용하고 있는 미송도마와 항균력이 뛰어나다는 얄팍하고 가벼운 죽(竹)도마, 앙증맞게 예쁜 멜라닌도마 등 집에는 여러 개의 도마가 있다. 그런데 합성목과 합성수지로 된 도마의 독성과 위생문제 등을 다룬 방송프로를 본 후부터 정말 좋은 도마 하나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우연히 모 로컬푸드점에서 편백나무로 만든 통도마를 발견했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보니 손에 들 수 있는 무게의 한정도 있고 다음으로 미루고는 잊고 있었다.

그 얼마 후 활동하는 문학회에서 상패와 함께 받은 상금의 일부가 손에 쥐어져서야 생각난 그 도마를 나를 위한 선물로 선택했다. 보얀 바탕에 네모반듯한 모양새가 단아해서 좋고 연갈색 나뭇결이 그대로 나타난 것은 수수해서 좋은데 은은한 향까지 더해지니 주방 싱크대 앞에 서면 콧노래가 나왔다. 기쁨이나 행복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왜 그리도 큰 것을 얻으려 안간힘을 쓰고 좌절하고 가슴 쓰려 했었는지 피식 우습기까지 했다.

그런 도마에 대한 사랑땜이 계속되고 있을 때 다니는 교회에서 흔한 두루마리 화장지 한 묶음을 상품으로 받았다. 신구약 성경필사를 한 사람에게 준 상품으로는 뜻밖의, 좀 어이없는 것이었다.

상을 목적으로 한 필사는 아니었고 필사를 한다고 상을 주는 전례도 없었다. 더구나 성경말씀에 깊이 빠지거나 열성적인 교인도 아니다. 그런 내가 연초부터 거의 날마다 몇 장씩 쓰다 보니 서른 자루의 볼펜잉크가 40매 대학노트 서른네 권으로 옮겨지고 연말이 다가와 있었다. 마침 모 방송국에서 성경필사전시가 열리고 있어 조금 일찍 마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일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단단한 계획이나 다짐도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그 전에도 두어 번 시작했다가 그만둔 새도 모르게 그만두고 잊었던 것처럼 이번이라고 뭐, 바쁨을 몸으로 보이고 소리로 내는 나날들이기에 마쳐보겠다는 생각은 그저 바람일 뿐이었다.

그런데 해냈다. 스스로 생각해도 장하고 다른 일엔 무심한 남편도 그 일엔 누구랄 게 없이 보는 사람에게 마다 자랑으로 민망하게까지 했다. 제도가 바뀌었는지 성경봉독한 사람에게만 주던 상을 올해는 필사한 사람에게도 준다는 공지가교회 주보에 떴다. 필사를 한 사람은 나 혼자였고 원본을 가져오라는 말에 볼펜까지 묶어 낸 필사노트는 한동안 교당 한쪽에 전시가 되고 상장과 함께 받은 것이 두루마리화장지 한 묶음이다. 커다란 부피의 그것을 들고 나오며 왜 그리 부끄럽고 교회에서 쓰라고 주고 올 걸 그랬다는 생각은 왜 집에 와서야 들던지. 별 좋지 않은 기분을 애써 지우기 위해 화장지의 의미를 아전인수 격으로 생각해 보았다.

화장지란 깨끗함을 위한 뒤처리용으로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남을 위한 희생과 봉사의 의미일 수 있다. 톡톡 한 손으로 쉽고 거만하게 뽑아 쓸 수 있는 티슈와 달리 꼭 두 손을 사용해서 뜯어야하는 겸손의 미덕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희생과 봉사, 겸손만 요구되지는 않는다. 집들이를 가거나 수험생에게는 술술 풀리고 풀라는 간절한 기원의 의미가 주어지지 않는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단순함을 넘어 하늘의 원만함과 땅의 변함없는 넉넉함을 일컫는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을 생각한다. 그에 대한 기원과 감사로 하늘에 지내는 제단은 둥글게, 땅에 지내는 제단은 네모나게 한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문화에 내가 받은 둥글고 네모진 상품과 선물의 의미를 새겨본다.

맡은 일은 ‘원만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겸손하게’하고 일이 꼬이거나 어려울 때면 ‘두드려라 풀리리라’기원을 할 수 있는 나날이 되라는 의미.

인생사 생각하기 나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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