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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모퉁이이석영 문학동인 글벗 회원
전민일보  |  jmi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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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8  1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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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만 대체 몇 번을 돌았을까? 이젠 세어보는 것도 지쳤다. 뒤를 돌아보면 출발점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20여년을 살아오면서 지나온 길만이 남아 후회와 그리움이 되어 내 속살을 파고들고 있다.

내 첫 모퉁이는 탄생이었다. 따뜻한 양수에 잠겨 안주하는 걸 거부하고 세상을 향해 발버둥을 쳤다. 낯설음이라는 두려움은 없었다. 그 땐, 갑갑한 뱃속을 떠나 팔다리를 내젓고 싶은 마음만이 지배했으니까.

그 뒤, 첫걸음과 말 배우기, 먹고 씻고 자기, 책 읽고 글쓰기, 사람 만나기라는 다양한 형태의 모퉁이를 돌았다. 생각 없이 마구 달려가다 급하게 기울어진 모퉁이와 마주치긴 했지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나에게 그런건 삼겹살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러던 내가 망설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2학년 봄, 아버지의 갑작스런 발령으로 정든 곳을 떠나 이사를 갔을 때, 나는 ‘왕따’라는 험난한 길을 만났으며 그길은 끊임없이 모퉁이를 만들어냈다. 이 상황을 이겨내 역전을 하던지, 아이들의 비웃음에 짓눌려 찌그러진 깡통이 된 채, 진흙탕을 뒹굴던지 같은 질문들이 마음 속 깊은 심장부를 자극했고 그 결과 뻔뻔스럽게 걷던 내 발은 완만한 모퉁이를 지나도 후들거리게 되었다.

심지어 뒤로 물러나 그나마 편히 쉴 수 있는 과거에서 설치다 허둥지둥 가던 길을 걷는 꼴사나운 모습까지 보였다.

넘어지면 어쩌지, 잘못 든 길이라면 함정이 설치된 게 아닐까 하는 우려에 세뇌당해 끝내 모퉁이 한가운데에서 드러눕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도 대학졸업까지는 어떻게 잘 갔다. 쉽게 갈 수 있는 길도 적진 않았으니까.

대학만 나오면 별 탈 없이 직선만 펼쳐진다는 거짓말을 누가 만들었을까?

‘학교’라는 관문을 통과하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건 인간이 돌아 걸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모퉁이들이었다. 면접관의 비웃음, 점장의 쓴 웃음, 가족들의 눈치, 주변 사람들의 고공행진이라는 모퉁이가 기어이 내 발에 흉터와 핏물을 만들어냈다. 이젠 접질러져, 다음 모퉁이를 돌 겨를도 없다. 발리 헤쳐 나가지 않으면, 곧 관문이 닫혀서 갇혀버린 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몸은 공포와 비참함에 병들어 쓰러지기 직전이다. 도와주는 이는 점점 떠나가고 난이도는 겉잡을 수 없이 올라가 있다.

그렇게 지금에 이르렀다. 출발점이 있는 붉은 지붕과 살구색 벽돌집이 그리워졌다. 돌아갈 수 없는 그 곳을 그리워하며, 새로운 모퉁이가 다가오는 공포에 떨고 있는 나는 누가 봐도 한심하고 갑갑하다.

앞으로 더 많은 모퉁이를 돌아가야 할 텐데, 걱정만 든다. 60살이라는 관문에 가기도 전에 40살이나 넘어설 수 있을까? 정말이지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서 힘들다. 태평하게 잘 걷다가도 예기치 못한 모퉁이가 불쑥 튀어나와 위협하니까. 그래서 견디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도중이탈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느새 20대 중반도 종막에 다다르는 지금, 난 여전히 모퉁이에 누워있다. 계속 앞으로 갈지, 도중이탈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제41회 전북여성백일장 수필부문 장원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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