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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徐熙)의 전쟁, 착하지 않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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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徐熙)의 전쟁, 착하지 않은 평화
  • 전민일보
  • 승인 2024.02.2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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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을 가던 길이었다. 여주시 어느 도로변에 안내 표지가 하나 보였다. ‘서희 장군 묘’

‘아! 그 분이 여기 계셨네’ 잠시 여정을 멈추고 장군 묘역에 들렀다. 주차장에서 홍살문(紅箭門)을 지나 5분 정도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장군과 그 아버지 서필(徐弼)의 묘가 나온다. 고려는 물론 오늘 우리민족의 강역을 지켜낸 위대한 인물은 평안히 잠들어 있었다.

익히 아는 바, 서희(徐熙)는 3차의 거란 침공 중 그 첫 번째 전쟁에서 빛나는 모습을 발휘한다.

고려 성종(成宗) 12년(993), 거란이 침공해왔을 때 왕은 친히 방어하고자 서경으로 행차하여 안북부까지 가서 머물렀다. 이 때 소손녕(蕭遜寧)이 봉산군을 격파하고 고려군 선봉군사 윤서안 등을 포로로 잡는다. 성종은 이 소식을 듣고 나서 더 이상 진군하지 못하고 되돌아오게 된다.

소손녕의 침략 논리는 이렇다. ‘고구려 옛 영토는 거란 영역인데 고려가 그것을 침범해서 토벌하려 왔다’

이에, 성종은 이몽전을 거란 진영으로 보내 강화를 요청하도록 하는데 소손녕의 요구는 더욱 강경했다. 이에 따라 성종이 주재하는 회의가 열린다. 회의는 현실론자들이 주도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는 충분한 타당성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왕은 개경으로 환궁하고 중신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항복을 간청하자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서경 이북의 땅을 분할하여 거란에게 주고 황주(黃州)에서 절령까지를 국경으로 하자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성종 역시 땅을 분할해 주자는 의견을 따르고자 했다.

국토를 양보하고 그 대가로 평화를 얻고자 한 것이다. 이때 서희가 나서서 이의를 제기한다.

서희는 성종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고구려 옛 땅을 차지하겠다고 떠벌리는 것은 실제로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의 군세가 강성한 것만을 보고 급히 서경이북 땅을 떼어 그들에게 주는 것은 나쁜 계책입니다. 게다가 삼각산 이북도 고구려의 옛 땅인데, 저들이 한없는 욕심을 부려 요구하는 것이 끝이 없다면 우리 국토를 다 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땅을 떼어 적에게 주는 것은 만세의 치욕이오니, 원하옵건대 주상께서는 도성으로 돌아가시고 신들에게 한 번 그들과 싸워보게 한 뒤에 다시 의논하는 것도 늦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쟁의 시대에서 멀리 벗어나 당대를 평가한다. 그리고 모두가 애국자가 될 수 있다. 서희를 찬양하고 할지론(割地論)을 주장한 사람들과 그에 따르려 했던 국왕을 비판한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당대 전쟁의 공포를 체험해야했던 당사자였다면 어땠을까?

이제 오늘 우리 살아가는 얘기다. 나는 러시아를 좋아한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를 패배시킨 불굴의 의지, 도스토예프스키와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볼쇼이의 나라.

가난할지언정 자존심이 살아있고 노점상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사람들. 이 뿐 아니다. 주변 열강 중에서 한반도 통일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러시아의 침공논리에 대해 이해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용납할 수 없다.

그것은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병합하려 한 것과 같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만일 국제사회가 이것을 묵인한다면 미래 그 피해 대상은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특히 한국이 그렇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지인 한 분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무고한 생명이 저렇게 죽어 가는데 일단 러시아 요구를 들어주고 나중에 평화로운 방법으로 타협을 하면 될 텐데 왜 저런 무모한 전쟁을 하는지 안타깝습니다”

‘증오보다 사랑이, 전쟁보다 평화가 아름답다’는 헤르만 헷세의 말을 누군들 모르겠는가? 적절한 타협 속에서 피와 전쟁대신 평화라는 달콤함을 찾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평화를 저버리는 어리석음으로 생각하는 내 지인과 993년 고려의 평화를 위해 국토를 양보하자던 할지론을 주장한 사람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착하지 않은 평화를 마주할 때 우리의 전쟁은 비로소 시작된다.

장상록 칼럼리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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