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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 핼리혜성 사건···음모론이 과학 대중화 앞당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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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 핼리혜성 사건···음모론이 과학 대중화 앞당겨
  • 이용 기자
  • 승인 2024.02.02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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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핼리혜성이 지구를 찾았다. 영국의 에드먼드 핼리가 이 혜성이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 세 번째였다.

 

20세기 초입에 이르자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해 혜성의 궤도를 예측하는 수준을 넘어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혜성의 구성 성분을 알아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해낸 핼리혜성의 구성성분 중에는 사이안화합물이 있었다.

 

사이안화합물은 이른바 청산가리로 불리는 사이안화포타슘이나 독가스로 알려진 사이안화수소 등을 포함한다.

 

당대 프랑스의 천문학자 카미유 플라마리옹은 지구가 시안화합물을 포함한 혜성 꼬리를 지나게 되면 혜성의 시안화합물이 지구 대기에 퍼지면서 지구의 생명체들이 대멸종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텔레파시·유령·초능력 같은 비과학적 음모론에 심취한 사람이었지만 당시 과학대중서를 써서 성공시킬 정도로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

 

‘저명한 과학자’의 이런 주장은 무책임한 언론과 입소문을 타고 전 지구적 공포를 야기했다.

 

미국에서 사람들은 혜성에서 날아오는 독가스를 막기 위해 방독면을 사기도 했고 독을 중화하는 정체모를 약을 사먹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1910년 1월 11일 대한매일신보의 ‘잡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올라왔다.

 

“혜성이 온다. 칠십오년만에 다시 돌아오는 ‘하리쓰혜성’은 작년 구월일일부터 비상히 속히와서 처음에는 구억칠천팔백만여리의 멀리 있더니 수월 안에 사억이천만리의 가까이 왔다”면서 “혜성의 꼬리는 지구를 두어시진 동안이나 싸고 있을지라 그때에 만일 지구 공기중 산소가 혜성의 꼬리에 있는 수소와 합하면 지구상에 있는 인류와 각색 동물은 기운이 막혀 전혀 멸망이 될터이며 그렇지 아니하면 공기중에 산소가 너무 많아져서 우리 사람의 육신 활동이 급속하여지고 정신이 착란되어 모두 미쳐서 발광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나···”라는 현대적 관점에서는 황당한 주장을 이어간다.

 

혜성 꼬리 음모론은 7개월 뒤 멸망할 운명인 동아시아의 변방 국가에 와서는 시안화합물 음모론에서 수소와 산소 음모론으로 묘하게 변했지만 패닉의 본질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 듯 하다.

 

이런 전 지구적 현상에 과학자들이 혜성의 꼬리 밀도가 너무 낮아 아무 영향이 없을 거라고 말해도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으니 이게 바로 그 유명한 핼리혜성 꼬리 소동이다.

 

이 소동은 비과학적이지만 그래도 혜성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이는 역할을 한 것 같다.

 

1910년 1월 29일 대한매일신보는 사설을 통해 혜성과 과학 발전을 논한다.

 

“오늘날 학문이 크게 밝아서 이치를 분명히 해석하는 이 세계에 있어서 저것을 재앙이라 놀라며 저것을 하늘이 경계하심이라 두려워하는 자가 없으니 저것이 비록 그 꼬리를 날마다 길게하며 그 광채를 날마다 현황케할지라도 우리는 다만 실상하고 자연한 이치로만 볼뿐”이라며 “서백리아(시베리아) 대철도가 만리의 황막한 땅을 지나서 만주의 인후를 누벼도 이것을 겁내지 아니하며 대서양 바닷물이 파나마를 끊고 태평양을 통한다하여도 이것을 놀라지 아니하고 비행선을 타고 공중으로 떠다닌다 하여도 이것을 이상하게 알지 아니하며···”라고 현대 과학과 기술에 경탄한다.

 

핼리혜성 꼬리 사건 이후 기나긴 시간이 지났다. 인류는 혜성의 궤도를 계산하는데 그치지 않고 가속팽창과 힉스입자를 발견하고 표준이론이 정립됐다. 당시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핵력을 이용해 폭탄도 만들고 전기도 만든다.

 

그러나 고도화된 과학이 정체모를 독성에 대한 대중의 불안을 잠재우진 못하는 모양새다. 현재 논란이 되는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에 대한 대중의 공포는 110년 전 핼리혜성 공포를 떠오르게 한다.

 

건강과 안전에 대한 불안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를 다루는 한국과 일본의 정치인들을 옹호하거나 반박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아무리 가능성이 낮아도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하지만 수산물과 천일염에 대한 대중의 상반된 반응은 우리 국민들이 빠져있는 패닉이 비이성에 가깝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사람들은 오염수 방류 전에 천일염을 사 놓아야 한다며 사재기를 해 소금 품귀현상이 벌어진 반면 수산업자들은 손님이 떨어져 울상이다. 소금도 물고기도 똑같은 바다에서 건져내는데 여기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다른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과학자들은 대중이 문제시하는 오염수의 삼중수소 농도가 건강에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 낮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들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제는 더이상 방사능과 관련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맹목적인 공포에 빠져 무조건 방류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과학적 근거가 아닌 정치적 논리로 방류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오염수 시음회로 격하시켰다.

 

점입가경으로 돌아가는 이 사태에서 굳이 긍정적인 요소를 찾자면 사람들이 방사성 물질의 방류와 처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베크렐이 어떻고 시버트가 어떻고 핵종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가 이토록 널리 인구에 오르내린 적은 없지 않았을까. 대중이 원자력과 그 부생물질에 대한 이해가 커지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백년 쯤 뒤 우리 후손들이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 기사를 찾아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김명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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