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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반나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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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반나절에 대하여
  • 이용 기자
  • 승인 2024.01.23 1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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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오월이었다. 고추 모종을 손수레에 싣고 밭에 가는 이웃을 만났다. 이미 한 번 내렸던 오월 서리가 한 번 더 올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지만, 날이 따뜻하니 본 밭에 옮겨심기를 서두르기로 했단다. 올해는 재배면적을 파격적으로 줄인 까닭에, 한나절이면 작업을 마칠 수 있겠다고 덧붙인다. 옆에 있던 젊은이가, ‘한나절이요? 이거, 반나절이면 심을 수 있겠는데요.’라고, 작업에 걸릴 시간을 넌지시 예측해 보인다. 젊은이는 나름대로 농사 이력이 쌓인 데다 눈썰미도 있는지라, 그의 예측이 많이 어긋날 턱은 없다. 그런데, 왜 굳이 고추밭 주인이 말한 ‘한나절’을 ‘반나절’로 줄여가며 자기 의견을 피력했을까? 정녕, ‘한나절’과 ‘반나절’의 단위에 대한 오해가 있었던 게 아닐까.

농촌이 고향인 사람들, 좁게 잡아 내 고향 장수의 농촌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나절’이라는 우리말을 자주 듣고 익숙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일상에서 자주 쓰였으되, 특히 농작업에 드는 품의 단위명사로 쓰였다. 시계를 보며 농작업의 시간을 재기보다는 일출과 일몰, 끼니때 등을 기준으로 하여 잴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또, 이웃끼리 서로서로 품앗이를 하거나 삯군을 사서 일하다 보니, 농사일을 모르는 어린아이들조차도 농사일의 시간을 재는 단위명사로서의 ‘하루’ ‘한나절’ ‘반나절’ ‘하루 반’ ‘한나절 반’등의 말들이 귀에 익어 있었다. 또한, 제대로 사용할 줄도 알았다. 하루일은 아침에서 저녁까지, 그러니까 일출에서 일몰까지 이어지는 일, 한나절 일은 아침에서 점심때까지 또는 점심 직후부터 저녁때까지 하는 일, 그리고 반나절 일은 말 그대로 한나절의 절반만 하는 일이었다. 해치워야 할 일의 양이 한나절거리도 안 되게 어중간하다면 놉을 아예 얻을 필요가 없을 테니, 작업 도중에 세찬 비가 쏟아지는 등의 돌발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놉을 얻어 반나절 일만 하고 그치는 경우란 몹시 드물었다. 그리하여, 위에 열거한 낱말들 중에 ‘반나절’은 그리 자주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오늘은 콩밭 두 벌 김을 다 맬 셈이었는데, 비가 워낙 세차게 쏟아지는 통에 한나절도 채우지 못한 채 무이고 왔네,” 쯤의 표현을 했는데, 일을 무이는 경우가 흔치는 않은 데다 굳이 반나절이라 하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나중에 품을 갚거나 품삯을 치르면 그만이었다. 일 하던 중에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하여 중단하는 것을 두고‘무이다’라고 했는데, 널리 쓰이던 이 순우리말을 들어볼 기회가 없게 된 것은, 기계화 영농으로 품앗이작업이 줄어든 데다, 정확한 기상 관측 덕분이려니 싶다.

위에서 말한 젊은이가 혹시 ‘한나절’과 ‘반나절’을 잘못 이해했다고 친다면, 그것은 정녕 방송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오락프로그램의 출연자에 의하여, 교양프로그램에 전문가 자격으로 불려 나온 패널에 의하여, ‘반나절’이란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무엇 무엇을 하는 데에 무려 반나절이나 걸렸습니다.’ ‘반나절 만에 찾았다고 합니다.’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는 거리입니다.’

등인데, 언제부턴가, 어법에 어긋남이 없는 그 문장들의 대부분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한나절’을 ‘반나절’이라 말하고 있음이었다. ‘나절’이란 단어가 주는 정감 때문에 ‘반나절’이 심심찮게 쓰인다면, 방송에서‘한나절’을 들어볼 기회는 더 많을 터인데, 그렇지 않다. ‘반나절’을 하루의 절반으로 인식하고 쓰는 경우가 많아졌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언어란, 처음에 잘못된 표현이었더라도 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 사용하면 표준어로 인정되기도 한다는 걸 상기하고, 혹시 방송의 영향력과 파급력에 의하여 이미 ‘한나절’이 ‘반나절’로 개정되기라도 했나 싶을 정도로, 방송에 의한 ‘한나절’의 ‘반나절’화는 일반화 되어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실력 있는 뉴스 진행자로 널리 알려진 분이 대담 프로에서 ‘반나절’을 언급하는 걸 보았는데, 그의 ‘반나절’역시, 전체 내용으로 미루어 ‘한나절’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여기에, 아름다운 우리말 ‘나절’의 사전적 풀이를 정리해 보기로 한다. 아울러, 혹시 출연자가 ‘반나절’을 잘못 말하는 방송을 통하여 이 낱말에 익숙해진 분들이나, 방송 관계자들의 새삼스럽고 진지한 관심을 기대해 본다.

*나절-1.하루 낮의 어느 무렵이나 동안. 2.하루 낮의 절반쯤 되는 동안을 세는 단위를 나타냄.

*한나절-하루 낮의 반 동안.

*반나절-한나절의 반쯤 되는 동안. 곧 하루 낮의 4분의1에 해당하는 동안.

김명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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