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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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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그늘
  • 전민일보
  • 승인 2022.07.20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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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는 태양이 대지를 달군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몸에서 땀이 샘물처럼 솟는다.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여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겐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여름이 필요하다.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거두지만 오곡백과가 익는 데 여름만큼 중요한 계절이 없다.

봄에 꽃이 많이 피는 것은 여름의 태양을 받아 열매를 익히려는 식물들의 전략이다. 여름이 덥고 긴 것은 모든 곡식들이 더 잘 익으라고 하는 축복이다. 만약 여름이 없다면 우리에게 봄의 기쁨과 가을의 풍성함도 사라진다. 열매를 바라보는 자는 오히려 더위를 고맙게 여겨야 한다. 여름은 위대한 계절이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이면 사람들은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을 찾는다. 나무 그늘 중에서도 느티나무의 그늘은 다른 나무들의 그늘보다 훨씬 시원하다. 그 이유는 바로 잎의 증산작용에 달려 있다. 느티나무의 수많은 넓은 잎을 통해 나무속의 수분을 공기 중으로 증발시키면서 주위의 열을 빼앗는다.

느티나무 아래 오면 시원한 바람이 몸에 흐르는 땀을 씻겨주고 더위를 잊게 해준다. 사람들은 정자에 앉아서 장기와 바둑을 두기도 하고 일을 하다가 지친 사람들은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회의장이 되기도 한다. 느티나무 그늘은 마을 사람들의 쉼터이고 소통의 공간이다.

옛사람들은 느티나무를 마을 어귀에 정자나무로 심었다. 옛날 시골에서는 봄에 느티나무의 잎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그해 농사가 풍년인지 흉년인지를 점쳤다고 한다. 느티나무 노거수는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휴식공간을 제공할 뿐만이 아니라 죽어서도 최고의 목재를 내어준다.

예로부터 오래된 느티나무에는 여러 가지 신비스러운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나무에게 득남을 기원하면 아들을 낳게 해주고, 한밤중에 느티나무 둥치가 광채를 띠면 동네에 좋은 일이 생긴다고도 한다. 이렇게 느티나무는 당산나무, 또는 신목(神木)으로 불렸다.

나이 많은 느티나무는 가지가 사방으로 고르게 뻗어 나가 균형이 잘 잡혀 둥근 원추형을 이루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 우람한 몸통은 자못 신령스럽기만 하다. 여름철에 잎이 신록으로 무성하게 들어차면 거대한 수관(樹冠)이 완벽하게 형성되어 장엄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느티나무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다. 전국 어디를 가나 오래된 동네 앞을 느티나무가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다. 향교나 서당 옆, 초등학교 뜰이나, 관청 터에도 어김없이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필자의 고향에도 수십 그루의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줄지어 있었다. 느티나무는 주로 동네 한가운데로 흐르는 냇가 주변에 몰려 있었다. 언제 누가 심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한여름이면 한치의 햇빛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무성했다. 아마 수백년 전에 심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린 시절 우리 집 앞에도 느티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집 앞에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는 유독 몸체가 굽어진 채 냇가 쪽으로 휘어져 있었다. 특별한 놀이터가 없던 어린 우리들은 여름이면 휘어진 느티나무에 올라 쉬기도 하고 나무 주변에서 동네 친구들과 모여 놀기도 했다.

특히 여름이면 동네 어른들은 마을 어귀(주막거리)의 우람한 느티나무 그늘에 모여 깍쟁이 윷놀이를 하며 놀았다. 깍쟁이 윷이란 손가락 두께의 단단한 나무를 약 3센티 정도 자른 네 개의 윷을 말한다. 멍석에 말판을 그리고 이 네 개의 윷을 종지에 담아서 흔들다 앞으로 던지며 노는 것이다. 만약 던진 윷이 중앙선을 넘지 못하면 낙점이다. 이는 주로 전라도에서 하는 전통 윷놀이다.

지금은 내 고향 느티나무들이 모두 사라졌다. 오래 전 하천 확장 공사를 하면서 우람한 나무들이 모두 베어졌다. 그 느티나무들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우리 마을은‘느티나무 마을’로 지정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마을은 느티나무를 찾는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고, 내 고향은 전국 최고의 관광명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7월의 땡볕 속에 도심 가로수 느티나무가 푸르게 빛난다. 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도로 중앙에 일렬횡대로 서 있는 느티나무들의 사열을 받는다. 그늘목 식재로 한여름 무더위를 식혀주는 느티나무들. 느티나무 그늘은 잠깐이나마 노동의 피로를 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쉰다는 뜻의 한자‘휴(休)’도 사람(人)이 나무(木)그늘 아래 서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느티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앉는 햇빛도 움직인다. 내 가슴은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다.

신영규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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