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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미륵불, 法燈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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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미륵불, 法燈明
  • 전민일보
  • 승인 2022.01.1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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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의 금산사는 슬픈 역사가 만들어낸 민중의 이상향이었다.

나당연합군에 의해서 백제가 멸망하자 부흥을 꾀했지만 허사였다. 패망한 민중은 온갖 설움과 핍박의 대상이었음은 불문가지다. 만경강 유역의 김제만경부안 등은 부흥운동이 활발했던 중심지였다. 삼한에서 가장 넓은 곡창지대와 서쪽 바다를 접한 풍요의 땅이었음이다.

그렇지만 3년에 걸친 백제 부흥은 변산부근에서 막을 내린다. 그 결과 삼한 내륙은 전쟁의 살육이 멈췄지만 금강 하구의 서해 곡창지대는 또 한 번의 피비린내가 이어진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는 신라마저 집어삼키려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의상이 그 사실을 알리려 급히 귀국한 670년부터 7년간 나당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은 676년 겨울 기벌포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기벌포는 백제 부흥 전쟁이 벌어졌던 백강(금강 하구)이었다. 또 한번의 전쟁터가 된 것이다.

마침내 신라의 당군 축출로 평정은 되었지만 백제의 입장에서는 한때 경쟁 상대였던 신라, 그것도 국력에 있어 비교가 되지도 않았던 약소국에 의해 멸망당함은 더욱 견디기 힘든 치욕이었을 것이다.

신라의, 신라에 의한, 신라를 위한 통치와 그에 따른 각종 공출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온갖 차별과 핍박 등 불이익은 백제인의 자존심에 큰 충격이었고, 마침내 민중의 원망과 한숨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이러한 시기 생각의 중심에 진표율사가 있었다. 또 다른 세상을 염원하는 민중의 간절함이 장차 미륵불이 주재하는 도솔천에 태어나길 희망하는 상생신앙(上生信仰)이었다.

이와 함께 현세의 고통을 구제하러 미래불이 내려와 용화세상을 이룬다는 하생신앙(下生信仰)이 결합한 이상적 세계관으로 나타난다. 현세를 잊고 참아내면 도솔천에서 미륵을 친견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세상에 미륵이 성불할 때 그를 좇아 사바세계에 내려와 제일 먼저 미륵 집회에 참여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긍정의 믿음관이었다.

석가모니불이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들을 남김 없이 구제한다는 대승적 자비 사상이었다. 이는 한 세기 동안 끊이지 않았던 전쟁터, 그 고통을 불보살의 가피로 극복하고자 하는 염원의 소박한 민중 신앙이었다.

미륵을 친견하고 계시받은 진표율사는 주류성(울금산성)의 길목 ‘부사의방’에서 금산사로 돌아와 연못을 숯으로 메운 다음 그곳에 밑 없는 솥을 연화대 삼아 미륵장존불을 조성한다. 외견상 3층의 통층건물로 1층은 대자보전(大滋寶殿), 2층은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은 미륵전(彌勒殿)이라 칭한다.

미륵신앙의 근본 도량인 금산사에 미륵이 내려와 머물 미륵전을 조성하고, 그 위에 도솔천을 구현하여 미륵상생을 실현하였다. 한마디로 민초가 메시아를 기다린 희망의 성지가 되었던 것이다.

갈 곳 없는 망국 백성이 의지할 데는 오직 종교적 신앙밖에 없었음이다. 미래에 미륵불이 출현하면 고통과 차별 없는 평등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 그 중심지가 금산사 미륵전이었다. 당연히 그 미륵불은 크게 조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회가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그러한 민중 심리를 이용한 가짜 미륵들이 출현함은 혼란한 시국의 또 다른 불행이었다.

두 아들을 협시보살로 삼고 자신은 생불을 자처하며 미륵관심법으로 민중을 현혹했던 태봉의 궁예가 그랬고 후백제의 견훤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참설을 신봉한 휘하 장수 왕건에 의해 궁예는 축출되고, 견훤은 후계문제로 자식들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되는 참극이 뒤따랐다. 특히 후백제를 용화세계로 묘사하며 금산사의 미륵불을 자처한 견훤은 새끼 미륵들에게 그곳 미륵전에 유폐 당하자 몰래 탈출하여 왕건에게 투항하며 노구를 의탁한다.

피를 부른 자식들 간의 살육과 왕건의 후백제 통일을 보면서 미륵은 번민과 울화로 등창이 발병하여 그만 병사하고 만다. 논산의 이름 없는 사찰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아비 미륵의 최후였다.

그의 유언대로 전주와 가까운 논산시 연무읍에 묻혔지만 미륵을 자처한 궁예, 견훤, 차천자 등의 허망한 죽음을 보면서 인간의 어리석음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연민과 인생무상을 느낀다.

반면에 임진 전쟁 당시 사실상 승군을 지휘했던 처영이 금산사 출신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뇌성병력과 같은 용맹함을 지녔지만 그의 행적은 침묵 속에 묻혀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뇌묵 처영’이다.

어쩌면 국가와 민족이 어려울 때 분연히 일어났던 승병장 처영과 그를 따르던 일 천여 승병들이 진정한 미륵이 아닌가 싶다.

숱한 전투와 이름 없는 전선에서 싸우다 죽어가면서도 무능한 조정과 통치자에 대한 원망과 분노 대신 왜적의 총칼에 허리가 잘리고 쑥대밭이 되었던 눈앞의 민중과 강토를 더 염려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도솔천에서 국가와 민족을 보살피는 그들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감격할 뿐이다. 그런데도 요즘의 어려움을 인내와 자력으로 극복하려 하지만 갈수록 번지는 코로나 19와 폭등한 주택가 문제, 극심한 빈부 격차와 세대 간, 진영 간, 지역간 갈등과 성차별 등 온갖 어려움이 한 되고 원 되어 모악산을 이루고 있다.

자초한 일인지라 매우 염치없어 감히 꺼내기도 민망하지만 그래도 늘 노심초사 조국과 민족을 걱정하며 상생을 기원하고 계실 진표 율사님 뇌묵 처영 대사님께 난국을 끝장낼 법등명(法燈明)의 대자비를 간구하며 떼쓰고 싶다.

양태규 옛글 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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