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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과 산업의 주춧돌을 다시 세우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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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과 산업의 주춧돌을 다시 세우는 우리
  • 전민일보
  • 승인 2020.09.2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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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토목공사에서 물기가 많고 무른 지반을 다지기 위해 '모래말뚝공법'을 사용한다. 1982년 광양만을 메워 생긴 연약한 땅에 엄청난 중량의 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이 공법을 처음 도입했다.

그 넓은 공장부지 전체에 모래 기둥을 2미터 간격으로 100만 개 넘게 박아 넣었다고 한다. 이 공법은 이후 인천국제공항 등 간척지에 세운 여러 기간시설에도 채택됐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원장의 소임을 맡고 있으면서 기초(基礎)란 기둥을 떠받치는 주춧돌(礎)이 놓이는 터(基)라는 의미를 생각할 때마다 ‘모래말뚝공법’을 떠올린다. 흔히 ‘기초가 탄탄해야 튼실한 건물을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건축물에서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이 흔들림 없이 바로서기 위해서는 주춧돌이 필요하다. 그 주춧돌이 제자리를 지키며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탄탄한 터가 요긴하다는 의미이다.

일류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말하는 공부법에도, 좋은 결실을 거둔 운동선수가 비결로 기초체력을 꼽을 때도, 또 매년 10월경 세계과학계의 초미의 관심을 끄는 노벨과학상을 얘기할 때도 한 목소리로 기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지금까지 압축성장의 결과로 거둔 경제적 성취 탓인지 기초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이가 많은 것 같다, 우리는 한국전쟁이 남긴 잿더미 위에서 기적 같은 고도성장을 이뤘다.

이 과정에 과학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데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60~70년대 해외에서 돌아온 이른바 유치과학자들이 제대로 된 연구장비조차 갖추지 못했던 열악한 국내 환경 속에서 연구개발에 몰두해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 결과 세계에서 유래없는 속도의 경제발전을 거듭해 IT기술 강국이자,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세계 11위의 경제대국, 현재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발밑의 과학과 산업의 지반은 어떠할까?

지난 해 7월 일본의 일방적인 수출규제조치에 대해 우리나라 과학계와 산업계가 나름대로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갓 메운 간척지와도 같은 곳에 급하게 집을 지어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는 점이다.

지금 과학계와 산업계가 함께 소재·부품·장비를 외치며 다시는 이런 수모를 당하지 말자고 노력하는 것은 뒤늦게나마 연약한 지반에 모래말뚝을 촘촘히 박아넣는 과정에 다름 아닌 것이다.

우리 기초(연)이야말로 이름의 ‘기초’라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공공연구기관, 대학, 기업연구소와 더불어 가장 아래에서 모래말뚝이 되는 역할에 정진하고자 한다.

한번 세우고 나면 다시 지반을 손볼 수 없는 실제 건축물과는 달리, 다행히도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지반은 정부의 정책적 배려와 연구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메워지며 탄탄해지고 있다.

우리연구원도 그동안 해외로부터의 전량 수입해온 연구장비를 국산화하고, 세계적으로 분석과학을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분석법과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는 연구 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지반을 다지고 있다.

그 중에도 특히, 보급형 투과전자현미경개발, 3차원 분자이미징 질량분석기 개발, 고성능 전자석 플랫폼 연구 등을 통해 물질의 기본적인 형태와 구조를 파악하는 국산 이미징 장비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대부분의 과학원리가 자연을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상기할 때, 이러한 분석과학 연구장비 중 이미징을 이용하는 장비를 개발한다는 것은 과학의 원점으로 돌아가 우리 약점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정부는 우리나라 기초과학과 산업발전을 위해 새로운 방사광가속기 건설을 결정하고, 지난 5월 초 부지로 충청북도 오창을 선정했다.

약 1조원이 투자되는 다목적방사광가속기 건설은 물리, 화학, 생명과학, 의학 등 우리나라 기초과학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에너지, 신소재, 반도체, 신약 등 산업분야의 기술력을 높이는 도약대가 될 것이다.

설계단계부터 산업지원을 염두에 두고 구축되는 오창 방사광가속기가 본격 가동되면, 그동안 산업기술기반의 경제성장을 달성해온 우리나라가 과학기술기반의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특히 가속기부지로부터 직선거리로 5km 이내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 연구원의 오창센터는 세계적으로 공동 활용하고 있는 유수의 첨단대형 선도 연구장비를 갖추고 있어서 방사광가속기와 연계해 운영할 경우 연구와 산업지원 측면에서 보다 큰 시너지를 도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660년경 세포를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 개발이 현대의 바이오산업을 이룩한 토대가 되었고, 1870년대 전파의 발견과 전화기 발명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IT산업과 모바일 혁명을 이끌어냈다.

이처럼 수백 년 역사의 탄탄한 기초과학으로 무장한 나라가 탁월한 기술을 창출하고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냄으로써 경제대국으로 당당히 군림하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만들어낸 산업기술을 재빨리 모방하고 개량해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기초과학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이러한 산업기술기반의 경제는 새로 출현하는 추격자에게 쫓길 수 있지만, 과학기술기반의 경제성장은 추격 자체를 불허하는 특장점이 있다.

아직도 진행 중인 일본의 수출 관련 조치 역시 자국의 최첨단 기술을 우리가 범접할 수 없으리라는 오만으로부터 벌인 일이며, 이것은 과학기술이 국가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연구장비개발과 새로 건설될 가속기는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함께 산업체질 개선을 선도하는 촉매제로 작용할 것으로 확신한다.

‘탄탄한 기초에서 뛰어난 응용이 나온다’는 격언처럼, 더욱 탄탄해진 기반 위에 태어나는 우리 과학·산업계가 만들어 낼 새로운 ‘응용’은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감히 전망한다.

신형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원장, 전북대 공과대학 화학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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