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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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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동인가
  • 전민일보
  • 승인 2020.05.14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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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과 경쟁했던 보시라이(薄熙來)는 홍위병(紅衛兵)이었다. 그는 문화혁명 당시 대중 앞에서 아버지 보이보(薄一波)를 반동으로 비판하면서 구타해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패륜임에도 보시라이를 옹호하는 논리는 있다. 그러한 행동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 보이보도 그런 아들을 이해했다고 한다. 이후 보시라이가 주석 자리를 놓고 시진핑과 경쟁할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데는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 보시라이의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홍위병들에겐 스승과 부모 역시 일소해야할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강의실과 집조차 평온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문화혁명은 극좌혁명이었다.

조선족이 중화민족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갖도록 만든 것도 바로 그때다. 민족적 자주의식을 표방한 조선족 지도층은 모두 숙청됐다. 당혹스러운 것은 그럼에도 그 난동에 어둠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봉건잔재를 일소했다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만인평등과 여성해방을 구현한 것도 분명 공(功)이다. 여전히 그 시절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생 쥐스트가 처형되기 전 남긴 말을 떠올릴지 모른다. ‘적어도 우린 저걸 해냈어.’

홍위병이 구현하려한 세계에 대한 평가는 유보적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지향했던 목표점은 명확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어떤 식의 표현을 했건 그것이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했던 곳은 정의라는 이름의 다른 버전이었을 뿐이다. 보시라이는 예외가 아닌 일상이었다.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강자의 이익’,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존 롤스(John Rawls)나 마이클 샌델 (Michael Sandel)이 아니어도 머릿속에 떠도는 잔상 하나 정도는 누구에게나 존재할 것이다. 홍위병들이 내세운 마오쩌뚱(毛澤東)의 이념도 그렇다.

아버지와 스승을 고발하고 단죄한 것도 정의를 위한 대의명분 말고 달리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구성원이 생각하는 정의는 어떠한가. 우문(愚問)이다. 그럼에도 사회의 어떤 정의로움에서 홍위병 논리를 떠올리는 나는 역사의 반동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두렵다.

대학교수가 강단에서 위안부와 관련한 내용을 강의했다. 학생은 그것을 녹취해서 언론에 공개하고 세상은 그 교수를 파면하라고 얘기한다. 이것은 과연 정의로운가. 만일 정의롭다면 홍위병의 그것과 비교해 어떤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 교수의 발언이 비애국적이고 반여성적이어서 공표해 단죄할 필요가 있어서라면 문화혁명의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언론의 자유는 물론 학문의 자유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은 내가 반동(反動)이어서인가.

민족반역자, 매국노, 응징취재라는 것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정의는 과연 정말 정의로운가. 나 역시 대학시절 교수님의 강의에 동의하지 못했던 순간이 적잖다. 내 짧은 공부와 빈약한 사고에 기인 한 바 대부분이지만 그것은 강의실안의 문제였다. 적어도 대학이라는 곳에서는 연구와 토론을 통해 문제해결이 추구되어야 한다. 당연한 귀결로 강의하는 모든 교수를 존경할 필요는 없다. 교수의 연구 성과와 강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학문 영역에서 토론과 비판을 하면 된다. 전체 강의의 일부를 발췌해 문제를 삼는다면 내가 썼던 글 역시 누군가에게 좋은 공격거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언행에 신중한 것과 자기검열은 다르다.

녹음과 녹화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자기검열은 이제 어디도 예외가 아니다. 교수는 이제 학문적 성과와 소신을 강의할 때조차 학생의 녹취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범위의 강의만 해야 한다.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논리와 공존할 수 없는 대학과 사회는 과연 미래 어떤 모습으로 종결될까.

해방 직후 송진우, 장덕수, 여운형 그리고 김구까지 동족의 총탄에 암살됐다. 그들을 암살한 범인들 모두는 확신범(確信犯)이었다. 그들은 민족과 조국을 위해 거사를 했노라고 자부했다.

나는 매국적이고 반여성적 인사를 옹호하는 반동인가.

누군가 내 글을 보고 응징취재를 온다면 그의 애국적 의견을 경청해야겠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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