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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헤어짐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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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헤어짐을 위해
  • 전민일보
  • 승인 2019.09.05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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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치른 한국사 시험에 율곡 이이의 당파가 무엇인지를 묻는 내용이 있었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율곡은 서인의 영수로 되어 있지만 그가 추구했던 것은 동인과 서인의 화합이었다. 물론 율곡의 그런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사안에 대한 근본적 생각이 다르면서 서로 존중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은 오늘 한국현실에서도 다르지 않다.

조선 붕당과 대한민국 정당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의 출발점도 거기서 부터다. 당파가 정의에 앞서는 현실이 내게만 그렇게 보인다면 분명 나는 불행한 사람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그로인한 헤어짐이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조선 현종과 그 보모얘기가 나온다. 현종의 보모는 조씨 성을 가진 상궁으로 본래 광해군의 후궁 허씨의 시비였다. 그런데 광해군이 반정으로 폐위되면서 허씨는 궁중에서 사가로 나가게 된다. 인조가 즉위한 후에도 궁중에 남게 된 조 상궁은 항상 마음에 불평을 품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허씨에 대한 정을 잊지 않고 때에 맞춰 의복과 음식을 변함없이 보냈다. 죽는 날까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종이 탄생하자 보모의 소임을 맡게 된 것이다.

현종이 5, 6세 때에 불을 가지고 장난치는 모습을 본 조 상궁이 홀로 곁에 있다가 이렇게 말한다. “제 할아버지가 불로써 나라를 얻었으니 저도 배우려 하는 것인가.”

놀라운 것은 어린 현종의 반응이다. 현종은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가 왕위에 오른 다음, 조 상궁을 불러 추궁한다.

“네가 아무 해의 일을 기억하느냐. 그때 내가 위에 사뢸 줄을 모른 것이 아니지만, 네가 나를 보호 양육한 공이 있기 때문에 차마 중한 형벌을 받게 할 수 없어서 참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현종은 조 상궁의 고신을 빼앗고 사가에 내쫓았지만 자신을 키워 준 정리를 생각해 죽을 때까지 먹을 것을 내려주었다. 현종은 군왕의 위엄과 보모에 대한 인간된 도리 두 가지 모두를 다 아우를 수 있는 헤어짐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 관계는 다층적이다. 관계의 성격과 깊이는 물론 형성되는 과정도 그렇다.

가족, 친구, 이웃, 직장동료, 자발적이고 적극적 의사에 의한 인연의 설정과 우연한 만남까지.

그런데 관계성은 유동적이다. 현종과 조 상궁의 그것만이 아니라 천륜이라는 가족도 예외가 아니다. 카프카의 작품 <변신>에서 그레고르에게 냉랭했던 여동생은 실제 카프카를 가장 이해해주고 격려했던 당사자였다.

오누이라는 관계는 천륜일지 몰라도 둘 사이의 관계성은 변한다. 바쁜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오빠에 대한 원망과 작품을 써야하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여동생에 대한 아쉬움, 요절한 오빠와 아우슈비츠에서 숨져간 동생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헤어진다.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완벽함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실현된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도 다르지 않다.

그가 이룩한 그 모든 덧셈의 총합도 결국은 뺄셈이 반영된 뒤에야 정확히 나타난다. 사람의 관계도 더함과 뺌의 연계과정이다.

시간이 더할수록 인지하는 지인의 수는 늘어나지만 친구의 수는 감소하는 역설도 그래서이다. 물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더함과 뺌의 대상이 될 것이다.

내 삶에 누군가를 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빼는 것은 훨씬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과 결과를 초래한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은 아쉽고 때로 아픈 일이지만 그래서 더욱 잘 헤어지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1992년 1월 이탈리아 브린디시와 스위스 루체른에서 만났던 베네주엘라 친구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그들은 아이비리그 명문 브라운대 재학 중이었다. 언젠가 그들이 적어준 앨범 속 주소를 찾아 떠날 날이 있을까.

어쩌면 베네주엘라 친구들은 내 가슴 속에만 담아둬야 할지 모른다. 적어도 내가 그들과 나눈 따뜻한 우정은 뺄셈의 대상이 되지 않을 테니.

길이 다르면 서로 달리 가면 될 뿐. 언젠가 달리 떠난 길의 종착점에서 혹시 만날 수 있다면 그 헤어짐이 더한 기쁨이 될 수 도 있지 않을까.

장상록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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