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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봉 왕가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전민일보  |  jmi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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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4  09: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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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왕족도, 귀족도, 양반도 없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 조선에는 양반과 상민 그리고 노비가 엄연히 구분돼 있는 계급사회였다. 조선 초기 10%가 되지 않았던 양반 비율을 생각하면 우리는 대부분 양반 후손이 아니라는 추론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누구도 자신이 상민이나 노비 후손이라 말하지 않는다.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을 위해 그것은 당위론적으로 옳다. 그렇다면 민주공화국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카스트 제도가 살아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또한 왕가의 존속은 어떠한가.

1793년 파리 콩코드 광장에서 루이 16세가 처형된다. 합스부르크 왕가와 더불어 유럽을 대표하던 부르봉 왕가가 프랑스 역사에서 사실상 종말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부르봉 왕가가 아직 존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대상이 프랑스가 아닌 스페인이다. 현 스페인 국왕인 펠리페 6세는 루이 14세의 후손이다. 연원은 1713년 체결된 위트레흐트 조약을 통해서지만 마냥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스페인이 1931년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은 내전에 휘말리게 된다. 이때 쿠테타 군을 지휘한 사람이 프란시스코 프랑코다.

그는 매우 흥미로운 인물로 나폴레옹 이래 최연소인 33세에 장군이 된 유능한 군인이었지만 연설에 능한 대중 정치인은 아니었다. 또한 그는 가정적이면서 신앙심이 강했지만 동시에 비범한 카리스마를 소유한 인물이었다.

1939년 내전을 승리로 이끈 프랑코는 사망하는 1975년까지 스페인의 철권통치자로 군림한다. 적잖은 사람들이 스페인 내전을 베트남전과 더불어 인류양심을 시험한 전쟁이라고 말한다. 이 전쟁의 참상을 웅변하는 미술 작품이 있다.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다. 내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37년 프랑코를 지원하던 나치 공군이 바스크 지역의 게르니카를 폭격해 2천여 명의 민간이 사망한다.

이 비극이 발생한 이유는 단지 나치 공군의 폭격연습이 필요해서였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프랑코의 강력한 우군이었다. 프랑코가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프랑코에 대한 히틀러의 기대는 대단했다. 그리고 자신이 도운만큼 프랑코도 자신의 편에 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히틀러는 프랑코에게 참전을 요청한다.

프랑코는 뭐라 답했을까. 영화 [대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는 그에게 그가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거야.” 프랑코는 아마도 그의 최측근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히틀러에게 그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할 거야.” 프랑코는 히틀러의 비위를 맞췄지만 참전 조건으로 터무니없는 것들을 요구했다.

결국 스페인은 2차 세계대전에서 사실상 중립국의 지위를 유지한다. 프랑코는 대내적으로는 철권 독재정치를 시행했지만 대외적인 전쟁의 참화는 피한 것이다. 종전 후 서방에서는 프랑코가 사실상 나치 편에 섰다고 비난했지만 스페인에 대한 무력응징을 할 만한 명분을 찾지는 못한다.

거기에 더해 냉전이라는 국제질서도 프랑코를 돕는다.

대한민국은 현재 주변국과 어떤 상태인가. 미국, 일본, 중국 그리고 러시아. 그야말로 세계 초강대국으로 둘러 쌓여있는 지구상 유일한 나라다. 북핵문제 해결과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의 노력이 외교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하지만 외교적 노력 없이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은 더욱 기대할 수 없다.

프랑코는 독재자였지만 그가 히틀러를 상대로 벌인 외교적 역량은 살펴볼만 하다.

프랑코는 후계자로 현 국왕의 부왕인 후안 카를로스를 지명한다. 적잖은 사람들은 국왕이 프랑코를 이은 독재자가 될 것이라 걱정했지만 후안 카를로스는 스페인의 민주화를 완성한 존경받는 국왕으로 남았다.

모두가 양반 후손을 자처한다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조선 양반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반증한다.

조선 양반은 너무도 강력한 권력집단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까지 그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반면 카를로스 국왕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만일 그가 프랑코의 뒤를 이어 절대권력자로 남으려 했다면 부르봉 왕가는 영원히 종말을 고했을 것이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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