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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민에게 위로를
전민일보  |  jmi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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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0  09: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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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친구가 부친상을 당해 조문을 갔다. 그 자리에서 만난 한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시의원에 한 번 도전해볼까 한다. 좀 도와줘라.”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난 너에게 투표해줄 투표권도 없다. 그런데 그 전에 각오는 돼 있나?”

친구는 무슨 각오인지 물었다.

“네가 정치를 하면 너를 지지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너와 가족에 대해 모진 소리를 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그것을 견딜 수 있겠어?”

잠시 생각하던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해줬다.

“너 정치하지 마라.”

유시민 작가의 얘기처럼 선출직 공인의 길을 걷는 것은 자신은 물론 가족 전체가 철저한 을의 길을 가야하는 고난의 여정이다.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그 길을 가겠다고 하는 것은 권력의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자신과 가족의 사익이 아닌 공동체와 역사의 발전을 위한 권력의지. 그것에 대한 소명의식이 없는 정치인은 그 자신은 물론 사회 전체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의 파고로부터 영국 헌정을 지켜낸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는 선거에서 낙선한다. 그가 가진 원칙이 권력의지에 우선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영국의 그 어떤 정치인보다 뛰어난 인물이지만 그가 낙선한 것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지식에 있어서는 학자에 못 미치고 행정력은 관료만 못한 이들일지라도 정치인이 될 수 있다. 정치인에게 필요한 것은 소통과 희생 그리고 사회에 대한 통찰과 미래에 대한 비전의 제시다.

오늘 우리에겐 어떤 정치와 정치인이 존재하는가. 조선의 붕당과 대한민국의 정당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가.

조선의 사림과 한국 현대사의 386세대에게 부여된 과제는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구분할 것인가. 그것은 나아가 위험하면서도 도발적인 질문을 만든다.

조선국왕의 무오류와 무책임에 대한 대척점에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무오류와 무책임의 문제에는 과연 차이가 없는가.

남곤, 심정, 홍경주에게 기묘사화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중종(中宗)의 책임을 물을 수 없는데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왕조시대 왕은 무오류와 무책임의 존재이지만 동시에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모순된 대상이다. 지금 우리는 왕이 아닌 국민이 주인인 세상에 살고 있다.

생각해본다.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2004년 국회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을 선사해줬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의결되는 순간 현장에 있었고, 근무했던 의원회관 5층에 사무실이 있던 박근혜 의원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또한 언젠가부터 막말로 구설수에 오른 홍준표 의원에 대한 개인적 인상도 달랐다.

내게 그는 점잖은 신사였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이 막상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에겐 악명 높은 갑의 존재라는 것도 보았다. 소소한 기억의 편린 중에는 이런 장면도 있다.

선거구 획정과 관련 지방의회 의원단이 국회를 방문했을 때다. 식사시간이 되어 근처에 있던 식당에 그들을 안내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벌어진 의원들의 행태가 날 놀라게 했다. 주문을 받는 여성 직원에게 그들이 보여준 언행은 내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여성 직원이 그들에게 친절하게 물었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의원은 참으로 지혜(?)로웠다. 국외에서 무례한 행동을 한 한국인이 무안함을 ‘스미마셍’으로 극복했다는 전설적 무용담을 떠올리는 명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지역을 말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리고 오늘 예천군 의원들이 보여준 한 편의 드라마는 오래 전 기억을 넘어 상상력의 수준을 도약시켰다.

호텔에서 보여준 국제적 소양과 무협영화에서 볼법한 활극은 기만과 협박을 더해 거짓으로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의원(議院)은 주민과 국민의 선택을 받아 그 자리에 있다. 그들의 일탈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주민과 국민이 부정할 수 없는 이유다.

예천군민이 느낄 참담함은 그래서 더욱 와 닿는다. 예천군민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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