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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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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사랑
  • 전민일보
  • 승인 2018.02.28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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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식료품 가게에서 밤고구마 한 상자를 사와 저녁에 삶아 먹었다. 함께 삶은 밤보다 더 맛이 있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는 2백 평 밭에 고구마를 심고 가을에 날을 잡아 온 가족이 고구마를 캤다. 가마니로 스무 개쯤 소달구지에 싣고 와 골방에 쌓아 놓았다. 겨우내 먹을 양식이었다. 아이들 도시락에는 고구마 몇 토막이 꼭 들어갔다.

겨울철은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양식을 소비하는 계절이다. 가능한 쌀 소비를 줄이고 보리나 잡곡을 먹어야 했다.

춘궁기 보릿고개를 어찌 넘기느냐가 큰 문제였다. 쌀만 먹기로하면 열 식구가 서너 가마 넘게 먹는다. 노인들 봉양도 힘겨운데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은 무섭게 먹어댔다.

살림을 잘하는 주부는 무밥, 콩나물밥, 우거지 밥, 고구마 밥을 고루 질리지 않게 밥상에 올려놓았다.

새로운 음식 맛에 식구들은 잘 먹었다. 점심은 수제비나 고구마에 동치미를 곁들여 먹을 때가 많았다. 마실 나온 아낙들 군것질에도 고구마가 유용했다. 한 소쿠리 정도 삶아 내면 출출한 배를 채우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봉지 커피를 한 잔 타 마시니 그런대로 운치가 있었다. 날씨가 싸늘해져 손자 손녀가 빗감을 하지 않는다. 앞으로 이런 밤이 많아질 테고, 외로움과 허기를 달래줄 고구마는 내게 있어 좋은 벗이 될 것이다.

고구마는 작은 것일수록 맛이 있고 비싸다. 예전 같으면 손가락만한 고구마는 캐지 않고 줄기에 매달려 있어 소의 여물로 들어갔다.

이젠 양으로 취하는 게 아니라 질로 선택하는 세태다. 요즘은 밤고구마보다 속이 호박처럼 노란 호박 고구마가 인기다. 값도 크게 차이가 난다.

제일 아래로 치는 물고구마는 단맛이 떨어지고 물컹한데, 어릴 적 우리는 물고구마를 먹었다.

고구마가 인기 있는 때도 있다. 흰 눈이 펄펄 내리는 날 밤, 다정한 연인끼리 극장을 나서면서 군고구마를 샀다. 호호 불면서 껍질을 벗겨 먹으면 맛있고 연애 분위기가 살아났다.

남의 밭 고구마를 캐다 혼쭐이 난 일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동네 꼬마들끼리 꼴망태를 메고 들에 나갔다.

지나가는 여름비가 흩뿌려 나무 밑에서 피하고 있었다. 누구 뱃속에선가 쪼르륵 소리가 나며 시장기를 느꼈다., 마침 언덕 아래의 고구마 줄기가 실하게 보였다. 우리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약속이 이루어졌다.

한참 뒤에 벽력같은 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모두 밭 주인의 억센 손아귀에 붙들렸다. 낫을 빼앗기고 논두렁에 무릎을 꿇은 채 잘못을 빌었다. 생전 처음 도둑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다. 씁쓸한 기억이다.

고구마에 함유된 식이섬유가 건강에 좋다고 한다. 흡착력이 강하여 발암물질과 담즙 노폐물, 그리고 지방 등을 체외로 배출시키는 효능이 있다.

변비에도 유익한 식품이다. 고구마에 함유된 칼륨은 나트륨의 배설을 촉진시켜 혈압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 성인병의 예방과 노화방지에 탁월한 식품이라고 한다. 연한 고구마 잎줄기를 꺽어다 살짝 데쳐 된장으로 조물조물 무쳐놓으면 맛있는 반찬거리가 된다.

일본의 장수촌으로 알려진 가고시마의 노인들은 고구마에 장수의 비결이 있다고 한다.

고구마의 아마이드 성분은 장속에서 이상 발효를 촉진하여 가스가 차고 소화율을 떨어뜨리는 단점이 있다.

여기에 궁합이 맞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김치다. 어릴 적 고구마를 먹을 때는 꼭 동치미나 김장김치를 곁들인 것은 지혜로운 일이었다.

옛적에는 고구마를 구황작물로 쳐 값도 쌌는데, 이제 건강식품으로 대접을 받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든다. 올겨울에는 고구마를 어느 해보다 많이 먹으려고 작정했다.

김현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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