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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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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
  • 전민일보
  • 승인 2017.07.05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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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피의자 치고 억울하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망나니의 칼날 앞에 선 죄인은 모두 억울하다고 한다.

인사청문회에 앞서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는 인사들은 하나같이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었다. 절해고도에 위리안치되어 숨을 거둔 왕족도 많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평생을 억울하게 산 사람도 부지기수다.

조선 성종 임금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던 연산군의 생모 윤씨는 사랑놀음을 하다 용안에 생채기를 내고 폐비가 되었다.

세자 아들을 둔 왕비의 몸으로 남편으로부터 사약을 받으면서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했을까?

아무런 이유 없이 공격명령 하나만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목숨을 버린 병사들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근질기게 쌓아 올린 부와 명예를 하루아침에 잃고 쫓기는 신세가 된 구원파의 지도자 유병언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는 결국 순천 어느 매실 밭 풀더미 위에 누워 생을 마감했다.

고교 동창생이었던 고 박정만 시인이 생각난다.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박 시인은 한수산 필화 사건에 연루되어 신군부 보안사령부에 글려가 심한 고문을 당했다.

한씨는 1981년 5월 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욕망의 거리>를 연재하였다. 어느 날 소설 내용이 제5공화국 고위층을 모독하고 군사정권을 비판했다는 혐의로, 작가와 중앙일보 문화부장 등이 보안사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서빙고 분실에서 3일 밤낮으로 계속된 고문이었다.

박 시인은 한수산과 서너 번 만난 일이 있었으나,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한 씨와 대학 동창이라는 이유로 박정만은 연행되었다.

박 시인은 어떤 고문에도 비명을 지르지 않고 침묵을 지켜 보안사 요원들을 자극했고 더욱 난폭한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훗날 박 시인은 정 문화부장에게 ‘도대체 내가 왜 그 사건에 얽혀들었는지 이유나 알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물었다.

정 씨는 한 작가에게 ‘왜 관련도 없는 박정만 이름을 댔느냐?’고 물었더니 ‘박은 아무 관련이 없어 털어보았자 먼지 한톨 나오지 않을테고, 그러면 무고함이 증명될 테니까.’라고 대답했다 한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조선시대 피의자에게 곤장을 쳐대며 ‘내 죄를 네가 알렸다. 누구와 공모했는지 이실직고하라.’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생사람 잡았다.

박 시인은 술 없이는 하루도 견디지 못하게 되었고, 신병이 깊어져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났고 박 시인은 낭인 생활을 했다.

월악산에서 두 달, 해남 대홍사에서 몇 달을 보냈다. 귀경해서는 시를 쓰고 원고료를 받아 술을 마시는 생활이 이어졌다.

입원과 퇴원을 번갈아가며 시를 썼고 매달 한 권씩 시집을 냈다. 목숨을 쥐어짜서 시를 빚었는지도 모른다. 박정만 시인은 1988년 10월 지병으로 억울하게 세상을 떴다.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은 없다. 돌이켜 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 기억에 남는 억울한 일이 별로 없다. 그렇게 살아온 것만도 다행이다.

나로 인해 억울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까? 모르고 지냈지만, 있었을 거다. 혹 있었다면, 그 마음을 풀어주어야 한다.

따져보면 억울한 대상이 모호할 때가 있다. 자격시험에 떨어졌다고 시험문제를 출제한 사람에게 분노할 수는 없다.

작전 중 부상을 당했다고 지휘관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누구라도 해야 할 일을 그가 맡은 것뿐이다. 오히려 운이 없었음을 탓하는 게 옳지 싶다.

오늘도 여기저기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억울해서 못 살겠다고 하소연한다. 그런다고 달라질 것이 없는 세상이 문제다.

사람은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는 어느 웃음치료사의 말이 떠오른다. 뇌가 자기최면에 빠진 탓이다.

마찬가지로 억울하다 말하면, 자신도 차츰 그렇게 인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조금 억울한 듯싶어도 냉정하게 돌아보며 이를 삭이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적어도 자신은 억울하지 않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사법기관은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따뜻한 법률적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김현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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