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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자의 파르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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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자의 파르헤시아
  • 전민일보
  • 승인 2017.06.20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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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인간은 자유로운 혀를 가지고 있다.”는 소포클레스의 일침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신념과 의지대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 일인지에 대한 오래되고 변함없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권력과 대중은 자신의 의사에 반한 직언을 결코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인사청문회 대상에 대한 공격과 수비도 바뀐다. 노무현 정부시절 논문 표절문제로 교육부총리를 현직에서 물러나게 만든 당사자가 이번엔 꼭 같은 문제로 심판대에 올랐다. ‘내로남불’은 이미 오랜 전통이 돼 버렸다.

고위공직자 임명이 성직자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에 대한 검증기준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문제는 그 기준이 위치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그것을 옹호하고 비판하는 대중의 인식도 다르지 않다. 진영논리가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혀가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선 그가 진정 자유로운 인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유로운 인간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자신의 자유로운 혀에 대한 책임을 망각하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 그것은 곧 만장일치가 아닌 일반의지와 같은 범주에 있는 문제다.

진실을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파르헤시아는 때로 고독하고 위험한 일이지만 두려움 없이 말하는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다. 또한 그것이 파르헤시아가 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담대한 발언이 파르헤시아가 되기 위한 진실의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진실에 대한 정의는 사실 보다 어렵다. 때로 그것은 영화 [라쇼몽(羅生門)]에 등장하는 진실의 수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존재하는 사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이 반드시 일관성을 띄지는 않는다. ‘내로남불’의 출발은 거기서 부터다.

자유로운 혀를 가진 자유로운 사람은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삶의 영역을 벗어나면 안 된다.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이 파르헤시아가 될 수 있는 가와는 별개로 그것은 최소한 자신이 감내해야할 기회비용이기 때문이다.

칼럼이나 강연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얘기했던 사람이 어떤 자리에 가기위해 그에 대한 변명과 후회를 내놓는다면 그것이 과연 파르헤시아가 될 수 있겠는가.

사회구성원으로서 공인에 대한 비판을 하는 책무를 맡은 사람이라면 그 역시 비판의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맞다.

불가피하게 어떤 공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면 자신에게 좀 더 냉정하게 칼을 들이댈 수 있어야하는 것은 말해 뭐하겠는가.

스피노자(Benedict de Spinoza)는 직업이 안경제조사였다.

당시로서는 첨단기술을 소유한 덕분에 그의 생활은 궁핍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사회적 안전까지 보장받은 것은 아니다.

그가 자초한 것이긴 하지만 그는 유대공동체로부터 파문 당한다. “천사의 충고와 성령의 판단에 따라 우리는 스피노자를 파문하고 저주하며 율법에 따라 축출한다.” 만일 그가 자유와 관용의 도시인 암스테르담에 거주하지 않았다면 그의 생명도 담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후일 스피노자가 베를린 대학 교수 초빙을 거절한 편지글에서도 잘 엿볼 수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몰두하자면 저 자신의 철학 연구를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공적으로 확립된 종교를 어지럽히는 모든 행동을 피해야 한다면 제가 가르치고 연구하는 자유가 결국 제한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과연 그러한 자유의 한계가 어디까지일까요. 저를 움직이는 것은 좀 더 나은 지위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다만 평안에 대한 사랑입니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철학적 사유로서의 범신론(汎神論)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그 만큼의 진실의 수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그가 자유로운 혀로 자유로운 사람의 인식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겐 진실을 두려움 없이 얘기할 수 있는 파르헤시아가 필요하다. 스피노자가 보여준 삶이 그렇다. 그럼에도 미움 받을 용기는 쉽지 않다.

거기에 더해 내가 두려운 것은 나와 같은 무지한 사람이 생각하는 파르헤시아가 과연 진실을 온전히 담고 있는가이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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