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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가 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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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가 만사
  • 전민일보
  • 승인 2017.05.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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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 수사 이순신(李舜臣)은 주사를 동원해서 타도까지 깊숙이 들어가 적선 40여 척을 격파하고 왜적의 수급을 베었으며 빼앗겼던 물건을 도로 찾은 것이 매우 많았다. 비변사가 논상할 것을 계청하니, 상이 가자하라고 명했다.”

임진왜란이 발생한 후 패전만 거듭하던 조선군의 승전에 관한 소식을 담은 1592년(선조 25년) 5월 23일자 실록기사다.

만일 한국사에 임진왜란이 없었다면 한국인 누구도 이순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설혹 기억된다해도 덕수 이씨 종친회원 일부와 소수의 역사학자들에 의한 희미하고 지극히 미시적인 것에 한정될 것이다. 그럼 역사학자들은 이순신의 무엇에 주목하게 될까.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서 특별할 것 없는 무신의 존재감은 미미하기만 하다.

아마도 이순신의 어떤 업적이 아닌 파격인사의 선례로 연구의 영역이 한정 될 것이다.

목릉성세(穆陵盛世). 선조(宣祖) 재위시절은 우리 역사상 최고의 인재들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임진왜란만 아니었다면 그 빛은 더욱 찬란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이순신이 차지할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순신을 기억하게 만드는 기록이 실록에 등장한다. 인사와 관련된 논란이다.

이때 조정에서 문제가 된 것은 비유하자면 위관급 장교가 군사령관에 임명된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순신이었다.

실록에는 이에 대한 부당함을 간하는 사간원(司諫院)의 기사가 두 차례나 등장한다.

1591년(선조 24년) 2월 16일 부당함을 간(諫)하는 소(疏)를 올린 뒤에도 선조의 반응이 없자 사간원에서는 이틀 후 다시 이런 소를 올린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이순신은 경력이 매우 얕으므로 중망에 흡족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인재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현령을 갑자기 수사에 승임시킬 수 있겠습니까. 요행의 문이 한번 열리면 뒤 폐단을 막기 어려우니 빨리 체차시키소서.’하니, 답하기를, ‘이순신에 대한 일은, 개정하는 것이 옳다면 개정하지 않겠는가. 개정할 수 없다.’하였다.”

만일 이때 선조가 사간원의 의견에 따랐다면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당시 사간원의 행동이 잘못 됐다 얘기할 수 없다. 그들 얘기가 결코 잘못된 지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라감사 이광(李洸)의 군관에 불과했던 이순신이 정읍현감으로 제수된 것도 1589년 12월 1일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도 보통 파격이 아니었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언론의 감시는 물론 시민사회의 시선까지 감안하면 오늘 날 이런 인사는 실현이 어려울 뿐 아니라 인사권자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돌아갈 사안이다.

우리는 여기서 적어도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목릉성세라는 수식어와는 무관하게 무능하고 시기심에 가득한 혼군(昏君)으로 평가받던 선조에 대한 재평가다.

적어도 이 부분 만큼은 선조의 인사에 대해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부담을 안고 강행했지만 역사상 최고의 인사가 된 이순신의 발탁은 추천한 사람의 공이 결코 작지 않지만 그것을 실행한 선조의 몫만큼은 아니다.

다른 하나는, 파격 인사를 감행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당시 상황이 이미 급박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정파적 이익에 함몰되거나 시류에 편승해 사태를 호도한 세력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순신의 인사에 대해서는 이후로도 계속된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부제학 김성일(金誠一) 등이 차자를 올려 시폐 10조를 논하고 이어 또다시 차자를 올린다.

1591년(선조 24년) 11월 1일자 선조수정실록에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시에 왜란을 대비해서 성지를 수축하고 병정을 선발하자 영남의 사민들은 원망이 더욱 심하였다. 성일은 본래 왜변을 염려하지 않았으므로 더욱 잘못된 계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비변사에서 장수를 선발하는데 이순신을 우선 발탁하니 성일은 또 잘못된 정사(政事)라고 하였다.”

김성일은 일본의 침략이 없을 거라 선조에게 보고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인사가 만사인 이유는 거기에 혜안과 책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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