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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묻지마 살인과 정치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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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묻지마 살인과 정치의 책임
  • 전민일보
  • 승인 2016.05.26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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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끔찍한 혐오범죄에 희생된 피해자 여성을 추모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이 출구 앞 추모의 벽에 붙인 수많은 포스트잇을 보며 마음이 무겁다.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정치의 책임을 통감하기 때문이다.

사회역학 분야에서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는 리처드 윌킨슨은 이미 10여년 전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으며, 남성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할수록 경쟁 탈락자들에 의해 여성이 더욱 고통 받는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낙오됐다는 생각을 가진 남성이 자신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뉴욕대 정신과 교수인 윌리엄 길리건은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위험한가’라는 책에서 미국 공화당 집권기에 자살률과 살인율이 급격하게 증가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이 시기 자살과 살인이 늘어난 이유가 불평등, 빈곤, 불황 속에 더 많은 국민들이 심리적 수치심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점을 수많은 통계를 통해 증명한 바도 있다.

학자들은 수치심이 폭력을 낳는다고도 한다.

폭력으로 수치심을 감추려는 행위는 남성들이 종종 폭력을 휘두를 때 원인이 되는 ‘체면치레’때문이라 분석하는 학자도 있다.

나는 강남역 노래방 화장실에서 일어난 끔찍한 범죄가 이런 이유 때문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중 많은 범죄가 자신이 느낀 수치심을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만회하려는 왜곡된 심리 때문이라는 것을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 알고 있다.

만약 사회적 자원을 소수가 독점하고 있는 불평등한 사회에서 살인적인 경쟁이 부추겨지고,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에게는 제2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그 사회는 여성이나 장애우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사회가 아니라 지옥일 것이다. 불평등과 경쟁 탈락으로 인한 수치심을 느낀 사람들이 끊임없이 약자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8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나라는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하는 아시아 최고의 경제 불평등 국가가 됐다. 상위 10%와 하위 10% 의 가구 소득 격차는 11.9배가 됐고, 대기업 근로자의 월급은 중소기업 근로자에 비해 무려 60%가 높아졌다.

유치원부터 은퇴 이후까지 이어지는 살인적 경쟁은 세대 내 경쟁에서 세대간 경쟁까지 확산돼 버렸다.

청년들은 연애, 결혼, 출산 포기를 말하는 3포 세대라는 자조에서 취업, 주택, 인간관계, 희망, 건강, 학업을 포기하는 9포 세대라는 절망에까지 이르렀다.

‘땅콩 회항 사건’에서 보듯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갑을관계에서 ‘갑’의 횡포는 당연한 것이 돼 버렸으며, 법은 ‘을’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가진 소수가 아닌 한 자존심을 지키기 어려운 나라,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나라에서 지난 3년 간 벌어진 일들을 되돌아보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세월호 희생자와 아이들의 유가족들을 조롱하는 집단이 생겼다.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현역 시절 따돌림을 당했던 예비군이 실탄을 주자 총기난사를 했다.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들이 집단화 되고, 혐오감정으로 낯모르는 여성을 살인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문제는 불평등이다. 이 불평등은 경제적 불평등만을 뜻하지 않는다. 앞서 소개한 리처드 윌킨스는 “위계질서가 권력을 둘러싼 남성들 간의 투쟁”이라고 단언하면서, 여성의 지위 향상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건강한 사회란 자유, 평등, 우애의 가치를 회복하는 사회라고 확신한다.

나는 여성정치인으로서 누구보다 사회적 불평등과 그로 인한 병리적 현상을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 자유, 평등, 우애의 가치로서 우리나라를 현재와 다른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 또한 지니고 있다.

이번 참혹한 범죄에 희생당한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아픔과 슬픔을 전한다.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살인자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여성의 지위를 높여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기를 소망한다.

조배숙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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