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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혁신적인 성공 신화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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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혁신적인 성공 신화 만들어
  • 박해정 기자
  • 승인 2014.11.27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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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 워털루 다리

전북도립미술관 10주년 특별전 ‘열정의 시대 : 피카소부터 천경자까지’가 내년 2월 22일까지 도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열정과 집념의 시대를 살다간 서양과 한국의 모더니즘 걸작을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에는 1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 중 주목할 만한 작품을 엄선해 8회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주

클로드 모네는 184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르아브르로 이사했다. 유년시절부터 그림 그리기에 재능을 보인 그는 외젠 부댕을 만나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며 외광묘사에 대한 기초적인 화법을 배우게 된다.

19세 되는 1859년 모네는 드디어 파리에 진출했고 그보다 열 살 연상의 피사로를 사귀게 된다. 알제리에서 짧은 군 생활을 겪은 모네는 해양 풍경 화가인 용킨트를 만나 다시 한 번 자연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됐고 파리의 글레르 화실에서 자신의 이상을 공유할 친구들인 르누아르와 바지유, 시슬리를 만난다.

1874년 모네의 제안으로 화가와 조각가, 판화가 등 39명의 예술가들이 총 165점의 작품으로 카퓌신가의 사진가 나다르의 작업실에서 무명의 전시회를 연다.

이 전시회에 내놓은 모네의 그림 ‘인상, 해돋이’가 대표 격으로 대중과 비평가의 조롱을 받으면서 이후 전시회는 ‘인상주의 전시회’라 칭해진다.

비록 당시의 이 전시회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대중과 화단의 외면으로 실패를 하게 되지만 훗날 혁신적인 성공의 신화를 만들어 내는 인상주의의 시발점이 됐고 모네는 인상주의의 대표로 인정받으며 결국 빛을 그려낸 예술가로 인정받게 된다.

모네가 인상주의를 시작한 것보다 미술사적으로 더 의미 있는 업적은 18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몰두한 ‘연작(series)’에서 나왔다.

동일한 모티브를 유사한 구도와 서로 다른 분위기로 반복해서 그리는 연작은 모네의 예술을 규정하는 원리가 돼 열점 이상의 동시 전시로 그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1891년의 ‘건초더미’전시를 시작으로 1892년의 ‘포플러’, 1895년의 ‘루앙대성당’, 1904년의 런던풍경, 1912년 베네치아의 풍경전시가 잇따랐고 1897년부터 1926년 사망 시까지 매달린 ‘수련’ 연작은 그 정점이었다.

2007년 6월 영국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모네의 ‘워털루다리, 흐린 날’은 1794만 파운드(약 326억원)에 낙찰되며 모네의 연작작품들에 대한 높은 관심과 재평가가 이어졌다.

1891년 여행 때 런던 연작을 구상해 1899년부터 1901년까지 세 차례 런던을 방문해 템스 강이 잘 보이는 샤보이 호텔에 묵으며 주로 안개 낀 장면을 그렸다.

모네는 안개 낀 런던의 장면들을 매우 인상 깊게 그려냈다. “날마다 런던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는 구나.”라고 블랑슈에게 편지를 쓸 만큼 그는 런던의 풍경에 매료됐다.

이번 전시의 ‘워털루 다리’는 안개 낀 도시에 옅은 붉은 색을 물들이고 있는 흐릿한 풍경이 담겨있다.
전체적으로는 이른 아침의 뿌연 색조이지만 자세히 보면 붓질 하나하나마다 섞이지 않은 원색들이 빛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눈에서 시각적으로 혼합되는 인상파의 전형적인 작품 경향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박해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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