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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판반차이 씨를 다시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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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판반차이 씨를 다시 생각함
  • 전민일보
  • 승인 2014.11.19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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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섶 문화비평가

 
판반차이 씨(61)와 그의 딸 판록한 씨(24). 이들은 지금도 경기도 안산의 한 결혼이주여성 쉼터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쉼터에서 배려해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낯선 이국 땅에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을 추운 겨울이 오고, 더구나 실종자 수색을 중단한 이후 상황은 더욱 갑갑해졌을터, 손자와 사위를 찾고자 하는 애틋한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세월호 희생자의 유가족 이야기이다. 4월 19일 비극의 침몰 소식은 다섯살 지연 양 뉴스와 함께 시작되었다. 여섯살 오빠가 구명조끼를 벗어줘 동생은 살려냈는데 정작 자신은 살아 나오지 못했고, 새로운 삶의 꿈과 온갖 살림살이를 트럭에 싣고 서울에서 제주도로 이사를 하던 아이들의 일가족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더욱 안타까워 했다.

그리고 늘상 그렇듯 이내 뉴스에서 사라졌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혀져 갔다. 최종 실종자가 10명이니 9명이니 하는 인원수 세기가 있을 적에도 그 중 두 명은 부자지간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 가족은 다문화가족이다. 그나마 시신을 찾은 고 팜티탄(한윤지, 29) 씨가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다. 판반차이 씨가 아버지이고 판록한 씨는 동생이다. 세월호를 타기 전 사위가 장인에게 전화를 해 “제주도로 이사를 마치고 5월에는 베트남에 한번 찾아 뵙겠다”고 한 목소리가 생생한데, 어처구니 없는 청천벽력의 사고 소식을 들은 고향의 가족들은 슬픔에 잠겼고 부녀는 곧바로 한국에 입국했다. 사위 고 권재근 씨(51)는 부안이 고향이다.

부패한 딸의 시신을 눈 뜨고 볼 수 없어 화장을 해 추모관에 안치해놨지만 장례는 치르지 않았다. 사위와 손자의 시신을 찾아 함께 치르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들이 계속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까닭이다.

이들의 한국 체류를 모욕하는 부류도 있다. 돈때문이란다. 지난 9월에 안산에서 만난 판반차이 씨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단호하게 말한다. “누가 이 말을 하든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아니다고 말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타국에 와서 딸의 시신을 받는다는 것은 아주 비참하다. 위로의 말을 못해줄지언정 우리에게 더이상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어느 부모가 보상금을 받기 위해 자녀가 죽는 것을 바라겠느냐? 이 나이에 자식의 장례를 치르게 되었으니 죽고 싶은 심정이다. 딸도 손녀도 못 데려가 빈손으로 베트남에 돌아가서 식구들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 손녀만 데려가서 키우겠다는 생각이지 보상금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다.”

좀 복잡하다. 지연이는 엄마, 아빠, 오빠 모두를 잃고 홀로 살아 남았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도 없다. 가족의 사고를 모른 채, 현재 서울의 고모집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연이가 더이상 불행해지지 않도록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행여나 고모집에서 놔준다 하더라도 외할아버지인 판반차이 씨는 한국인이 아니므로 손녀를 베트남으로 데리고 가기에도 쉽지 않다. 판반차이 씨와 판록한 씨는 지연이를 잠시나마 간혹 만난다. 조카와 대화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판록한 씨다.

“베트남에 있는 엄마와 통화하면 지연이 보고 싶어 하고 목소리라도 들려 달라고 한다. 그리고 식구들 다 언니 잃었지만 외손녀만큼은 키우고 싶어 하신다. 아이는 양육권을 받는 게 어려운 줄 아는데 꼭 지연이를 키우고 싶다.”

쿠바의 위대한 민족시인 호세 마르티(1853~1895)는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잠을 잘 권리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패자(覇者)의 도를 걷지 않는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새겨들어야 할 덕목이다. 특히 세월호 유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백성’들마저 국가로부터 외면당하는 판국인데, 국가의 백성이 아닌 외국인 유족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건 차라리 미스테리다. 올 겨울엔 날씨라도 좀 따땃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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