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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바람] 돈을 돈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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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바람] 돈을 돈답게
  • 전민일보
  • 승인 2014.11.17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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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조 모심과 살림 연구소 연구원

 
돈은 교환을 위해 태어났다.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서로 다른 물건을 매개하는 운명을 부여받았다. 처음에는 물건을 매개했고 점차 인간의 노동과 지식은 물론 바다와 대기, 동물과 식물 등 자연으로 범위를 확산해 갔다.

돈이 매개하는 모든 것들은 수명이 있어서 시간이 흐르면 본래의 가치가 사라지게 된다. 반면 돈은 결코 늙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이자를 낳아 스스로 가치를 증식한다. 이러한 돈의 속성이 부의 편중과 화폐 경색을 일으킨다. 독일 경제학자 게젤(S. Gesell)의 이야기다. 그는 돈이 불러오는 문제를 막기 위해 돈의 감가상각, 즉 돈에 수명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의 아이디어는 지역화폐의 형태로 실현됐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경제 위기가 닥쳐 심각한 실업이 발생하고 세수가 줄어 지자체의 기능이 마비되자, 미국 아이오와(Iowa)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질스트라(C. Zylstra)씨는 공공 영역의 업무 수행을 위한 실업자 고용에서 화폐 이용시마다 3센트씩 가치가 감소하는 지역화폐를 발행했다. 돈의 가치 감소는 소유자의 이익을 침해하므로 돈의 회전율과 유동성을 높여 경제의 활력을 높이는 효과를 냈다.

이와 비슷한 실험이 8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아프리카 케냐의 빈민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방글라-페사라는 지역화폐를 스스로 발행하여 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함으로써 개인의 수입을 보충하는 동시에 기금을 모아 공공의료서비스와 쓰레기를 처리하는 공공서비스를 만들어가는 등 빈곤을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통화는 돈이 상품이나 가치 증식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본래의 기능인 교환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한편, 최근에는 지역경제 보호라는 측면에서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2012년부터 브리스톨파운드라(Bristol Pound)는 지역화폐를 도입하고 있는 영국 브리스톨시다. 현재 650개의 사업체가 이용 중이고 52만 8천 유로가 전자화폐와 지폐로 발행됐다. 시장도 자신의 봉급 전액을 지역화폐로 받으며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화폐 발행의 주요 목적은 지역 자금의 역외 유출 방지다. 1유로를 사용하면 10~12%만이 지역에 남게 되는 현실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외에도 공동체 활성화, 환경보호, 지역복지 등의 목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국가가 아닌 민간이나 지자체에 의해 발행되는 지역화폐는 약 5,0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된다.

세계적인 지역화폐 실험은 최소 두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 첫째 화폐는 교환의 매개로만 기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지역 경제는 물론 공동체와 사회환경적인 관심을 계속해서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역으로부터 유리된 지역 화폐는 더이상 주민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IMF 이후 지역화폐가 소개되어 약 30곳에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대전의 한밭레츠가 규모는 작지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지역경제 보호와 공동체성 복원이라는 측면에서 지자체들도 관심이 높다. 서울 노원구, 은평구, 경기도 의정부시, 수원시가 이미 지역화폐를 실험 중이거나 시행할 예정이다.

광역 단위로는 강원도가 가장 발빠르게 움직여 2016년부터 도입을 준비중이다. 강원도내의 양구군이 2007년 ‘양구사랑상품권’을 발행한 이래 군내 95% 업체가 가맹점으로 등록하여 제 2의 화폐로 자리매김한 경험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지역화폐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국가 화폐를 보완하여 돈이 돈답게 기능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최근에 나타난 지역화폐에 대한 관심이 반복적인 경제 위기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화폐 시스템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는 날까지 지역화폐 실험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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