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30 21:29 (화)
독자권익보호위원회 활동사항
2014년 6월 칼럼 기고
icon 전민일보
icon 2014-06-25 14:05:11  |   icon 조회: 1355
첨부이미지
교양 있는 사회
안배근 예원대 교수·본보독자권익위원회 위원

교양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교양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한다. 때로는 몸가짐과 언행이 공손한 사람을 가리켜 교양이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문학에 대한, 철학에 대한, 예술에 대한 폭넓은 소양을 가진 사람을 두고 교양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더욱이 우리 모두는, 그것이 실천적 의미의 교양이든 혹은 지성 일반의 교양이든, 어떤 의미에서건 각자 교양 있는 삶을 영위하고자 노력한다. 그 이유는 교양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직결된 개념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교양이란 개념은 독일 철학자 헤겔을 통해 보다 뚜렷하게 그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헤겔이 말하는 교양(Bildung), 무엇보다 교양 있는 사람이란 ‘자신의 특수성에 매몰되지 않고 보편적인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즉 투박한 예로, 길고 긴 야근을 마치고 올라 탄 퇴근버스에 노약자석, 임산부석이 눈에 들어오면 우리는 오늘 하루만은 편하게 앉아서 갔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는 자신이 처한 특수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우린 노약자나 임산부를 위해 주어진 자리를 양보해둔다. 이것이 바로 특수성을 버리고 보편적으로 인정된 규칙과 합의에 따르는 행동이며 교양 있는 행동이다. 쉽게 말해, 교양이란 모든 행동거지가 보편적 원리에 부합되는 것이라기보다, 적어도 보편적으로 인정된 것을 좇으려는 상태인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지식과 별개로 교양이 우리 모두에게 추구의 대상이 되는 이유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감스럽게도 24일 사퇴한 문창극 총리내정자는 홀로 이 ‘교양 있는 삶’을, 나아가 ‘교양 있는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스스로 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문 후보에 대한 하마평 때문만은 아니다.

역대 총리후보에 대한 의혹제기와 논란은 항상 있어 왔다. 하지만 이번 문제는 다르게 비친다. 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교양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의 그간 주옥 같은 발언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가 식민지배를 받은 것은 이조 시대부터 게을렀기 때문이며 이는 하나님의 뜻이다.”, “남북분단과 6ㆍ25 전쟁 또한 우리 민족의 역경 극복을 통한 성장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다.”위의 발언만을 두고 나는 대한민국 대표 언론사의 주필을 지낸 분을 친일분자 혹은 광신자로 매도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다만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교양시민으로서, 그의 ‘교양없음’에 황망함을 넘어 분노를 느낄 뿐이다. 이는 그의 다분히 ‘특수한’세계관 때문이며, 그 기저에 놓인 사회적 약자를 향한 잔잔한 공격성 때문이다.

물론 한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한계는 분명 고려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우리들 자신에 내재해 있는 한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우리 사회의 교양을 대변하는 국무총리 내정자였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후보자가 지니고 있는 지극히 특수한 세계관은 더 이상 간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본 인사를 위기 또는 참극이란 단어로 꼬집었던 이유이다. 또한 우리가 인간 문창극이 아니라, 총리 문창극을 두려워했던 이유이며 교양의 이름으로 거부했던 이유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교양의 개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자신의 특수성을 방기하고 보편적인 원칙에 따르는 것. 왜 우리 정부는 대다수 국민이 보내는 ‘보편’의 목소리에 분열을 조장하는 ‘특수성’으로 화답하는가. 우리 모두는 교양 있는 사회의 시민이 되고 싶다.
2014-06-25 14:05:11
218.54.155.6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