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읽었던 그의 전기에서 감동했던, 버드나무와 관련된 그의 정직성이 조작된 허구라는 사실은 물론이고, 친구의 아내와 불륜관계에 빠졌던 사생활, 3,000명에 이르는 노예소유 사실 등은 과연 그가 미국의 국부로서 자격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또한, 총사령관의 직책을 가지고 독립을 쟁취했지만, 그가 참전한 8차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3차례에 불과하다. 미국인들이 ‘전쟁은 7전 4선승제의 월드시리즈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면 군인으로서의 능력에도 회의가 들 만한 전적이 아닐 수 없다.
‘조지 워싱턴’은 ‘예수’가 아닌, 허물 많은 인간이었을 뿐이다.
그가 미국인에게 국부로 추앙받는 것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욕심을 억제할 수 있었던 데 있다.
그가 ‘요크타운전투’에서 승리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 했을 때, 그 누구도 그가 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모든 전리품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의 ‘조지 3세’는 반란의 수괴로 치부했던 그를 향해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경탄했다.
후일, 그가 ‘제임스 메디슨’을 비롯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기초한 헌법에 의해 초대 대통령에 취임 했을 때, 지구상에서 최초로 그 자리에 오른 그가 왕이 되고자 했으면 왕이 될 수 있었지만, 그는 오늘날 보편적 시민들이 생각하는 대통령상을 만들고, 그 자리에서 미련 없이 내려오는 놀라운 결단을 보여주었다.
우리에겐 ‘조지 워싱턴’과 같은 존재가 있는가?
요 며칠 우리는 한명의 전직대통령을 떠나보내며 거의 모든 시민의 눈과 가슴에 이슬이 고이는 현상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여운은 지속될 것이다.
그의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 중에는 자신을 ‘21세기 갈릴레오’로 칭하는 보수논객도 있고, ‘세기의 장례식’운운하며 비꼬는 노교수도 있다. 그들의 하는 말이나 논리가 틀리지 않음은 ‘조지 워싱턴’의 허물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으리라.
국민이 슬퍼하고 그를 기리는 것은 허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가 가고자 했던 방향성과 진정성에 공감하는 당대의 역사적 평가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가 떠나간 후 느끼게 되는 허전함을 어쩔 수가 없는 비겁한 방관자일 뿐이다.
지난해 연말, 퇴임 까지 만3년을 청와대 행정관으로 보좌한 지인이 술자리에서 내게 이런 말로 그를 평한 적이 있다.
“저런 말씀은 여기서만 하시고 공개석상에서는 안 하셨으면 좋겠는데.. 괜한 시비만 불러올 텐데 싶은 말씀도 나중에 공개석상에서 그대로 하셨습니다. 발언에 대한 평가나 시비를 떠나, ‘무대 앞’과 ‘무대 뒤’의 말이 다르지 않은 분이십니다.”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는 말을 실감 했을 때는 너무 늦었을까?
하지만, 너무 자책하지는 말자. 누구나 그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와 같은 사람을 지도자로 선택할 수 있는 당신은 부끄럽지 않은 존재이기에
장상록 / 완주군농업기술센터 지도사
저작권자 © 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