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9 09:20 (월)
왜군에 맞서 싸운 1만명... 400년간 누군지도 몰라
상태바
왜군에 맞서 싸운 1만명... 400년간 누군지도 몰라
  • 전민일보
  • 승인 2009.04.08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똑 같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도 신분이 낮은 일반백성과 군졸들의 업적은 400년이 넘도록 후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전북도에 따르면 지난 3월 17일부터 19일까지 ‘만인의총 관리사무소’를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한 결과, 순절위패 1만여 명 중 확인된 순절자는 5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1957년 선조 30년 7월 정유재란 당시에 남원성 전투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민?관?군 1만 여명 가운데 신분과 이름 등 위업이 확인된 사람이 50여명이 전부라는 것이다.
남원 ‘만인의총(萬人義塚)’은 정유재란이 끝난 뒤 광해군 4년인 1612년(광해군 4년) 당시 순절한 1만여 명의 시신을 거두어 한 곳에 묻고 그들의 넋을 기리고자 사당이 세워졌다. 
당시 광해군은 충열사(忠烈祠)를 짓고 사당 중앙에 남원부성 순절 만인지위 란 위패와 좌우로 전라병사 이복남을 비롯해 50여명의 위패를 봉안했다.
좌우로 봉안된 50여명의 위패는 당시 신분이 높았던 접반사(接伴使) 정기원(鄭期遠), 이복남, 방어사 오응정(吳應井), 조방장 김경로, 별장 신호(申浩), 남원부사 임현(任鉉), 통판(通判) 이덕회(李德恢), 광양현감 이춘원 등이다.
반면, 이틀간의 처절한 남원성 전투에서 왜병과 직접 전투를 벌이다 순절한 일반백성과 군졸 등 1만여 명은 ‘무명용사’의 신분으로 남원부성 순절 만인지위에 한꺼번에 모셔뒀다.
그 들이 누구인지 당시 전투에서 어떤 위업을 달성했는지에 대한 사료분석이 지난 411년 동안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전북도는 1981년 4월 1일 사적 제272호로 만인의 총을 지정하고 있지만 지난 28년간 역사적 사실고증과 증명 등의 연구보다는 시설관리 업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에만 15만5000여명의 참배객들이 다녀갔지만 지난 28년간 위업선양을 위한 학술적 연구 보다는 위업선양 그림그리기, 글짓기 등 일회성 행사에 치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만인의총 관리사무소는 총 9명이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 이 중 3명은 청원경찰이며 나머지 6명은 녹지직 등 기능직으로 학예연구사(관)는 단 한명도 배치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남원성 전투에서 1만여 명의 민관군이 순직한 지 412년이 되는 현재까지 확인된 순절자가 50명에 불과하고, 그 후손확인도 이덕회 등 22명에 그치고 있다.
만인의 총의 한 관계자는 “일반 백성과 군졸 등의 경우 역사적 자료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순절자 확인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후손들을 통해 제한적이나마 확인이 가능하지만 전문 인력이 없는 점도 문제다”고 말했다.
윤동길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군산 나포중 총동창회 화합 한마당 체육대회 성황
  • 기미잡티레이저 대신 집에서 장희빈미안법으로 얼굴 잡티제거?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대한행정사회, 유사직역 통폐합주장에 반박 성명 발표
  • ㈜제이케이코스메틱, 글로벌 B2B 플랫폼 알리바바닷컴과 글로벌 진출 협력계약 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