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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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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서의 하루
  • 전민일보
  • 승인 2014.07.3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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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록 농촌지도사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낯선 풍경과 사람들. 그렇게 또 다른 만남을 기대하며 새벽녘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탑승수속을 하는데 태풍으로 9시간 지연출발 한다고 한다. 안전을 위해서라니 어찌하랴. 공항에서의 남은 10시간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샀다.

[효명세자] 정조(正祖)의 손자로 개혁을 이루고자 했으나 요절한 비운의 세자다. 흥미로운 대목 하나는 김재찬이 순조(純祖)에게 세자가 노는 걸 좋아한다며 부왕의 모범을 얘기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때 효명의 나이 고작 만 6세 때다. 그 또래 아이가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닌가. 조선의 왕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는 공부가 전제돼야 했다. 유친원생 나이부터.

모처럼 휴가를 공항에서 독서로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하노이엔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음 날 본 하롱베이의 절경은 가히 세계 자연유산으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하노이와 그곳 사람들이었다. 아쉬운 것은 그것들을 다 보기엔 시간이 너무도 짧았다. 흔히 베트남은 ‘전쟁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고 얘기한다.

물론 그것은 정확한 얘기는 아니다. 한무제(漢武帝) 이래 중국은 베트남을 끊임없이 침략했고 그 결과 중국의 세력권인 조공체제에 들어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주권을 결코 훼손당하지 않았고 순간의 예속은 있었을지언정 언제나 스스로 그 굴레를 끊어버린 민족이다.

몽골제국이 정복하지 못한 세 곳 중 하나가 바로 베트남이다. 3차례에 걸친 대규모 몽골군 침공을 격퇴한 베트남의 승리는 이집트나 일본의 그것보다 훨씬 놀랍다. 그리고 그 중심엔 베트남의 이순신(李舜臣)으로 얘기할 만한 쩐흥다오(陳興道)가 있다. 후일 피식민지배국이 식민지배국을 상대해 최초로 승리한 디엔비엔푸 전투는 결코 우연하게 나온 것이 아니다.

미국은 프랑스의 조언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또한 등소평(鄧小平)의 중국도 그 사실을 간과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G2라는 두 국가는 결국 막대한 인명손실만 초래한 체 철수해야 했다.

내가 본 필리핀인은 유쾌하면서 낙천적이었고 캄보디아인은 유순하고 순종적이었다. 하지만 베트남인에게선 오만할 정도의 자존감이 엿보였다. 바로 자신들이 피로써 지킨 독립에 대한 긍지였다. 베트남의 역동적인 경제성장 역시 그것과 분리해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비록 현대사에서 악연이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그 연원이 깊다.

베트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는 호치민(胡志明)이 다산(茶山)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항상 끼고 살았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지만 그 이전부터 양국사이엔 교류가 있어왔다.

화산이씨의 시조 이용상(李龍祥)은 본래 베트남 이왕조의 왕자로 고려에 귀화한 인물이다. 후일 그는 몽골군을 격퇴하는데도 기여했다. 또한 이수광(李?光)이 사신으로 연경(燕京)에 갔을 때 베트남 사신 풍극관(馮克寬)과 교유한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때 지은 이수광의 시는 풍극관에 의해 베트남에 소개되는데 이것은 후일 조완벽(趙完璧)에 의해 조선에까지 알려진다.

조완벽은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 포로가 돼 베트남에 갈 기회를 가지게 되는데 이때 베트남에서는 이수광의 한시집이 없는 집이 없을 만큼 널리 읽히고 있었다고 한다. 오히려 베트남인들은 이수광을 알지 못했던 조완벽에게 ‘이수광을 모르냐’고 물으며 의아해 했다고 하니 한류의 원조인 셈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들을 너무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나는 적잖은 한국인들이 시큰둥해한다는 수상인형극을 호기심을 가지고 봤다. 천년을 이어왔다는 공연에는 그들의 문화적 저력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귀국하기 전 호치민 박물관을 나오며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지켜보던 직원이 미소와 함께 물었다. “어디서 왔어요?”나도 미소로 답했다. “대한민국에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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