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5-02 22:08 (목)
싸리비
상태바
싸리비
  • 전민일보
  • 승인 2016.06.23 1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며칠 전 선영을 다녀오다 고향 집을 지나게 되었다.

십여 년 전에 귀향한 이웃 사람에게 그 집을 팔았으나, 그동안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여 고샅에 들어섰다. 예전 같으면 누렁이가 달려 나와 꼬리를 칠 것인데, 개를 키우지 않는지 고요했다.

초록색 페인트를 칠한 양철 대문이 반쯤 열려있었다.

고개를 들이밀고 둘러보니 멍석 위에 쑥, 냉이 등 봄나물이 가득 든 소쿠리가 놓여 있고, 바지랑대로 받친 빨랫줄엔 아이들 옷가지가 걸려있었다. 부엌 옆 돌 절구통엔 닳아빠진 빗자루가 비스듬히 걸쳐있었는데, 눈에 익은 싸리비였다.

농가에서 가을 추수가 끝나면, 싸리나무를 베어다 가지를 묶어 싸리비를 만든다.

작년 11월 경북 봉화군 새마을지도자협회는 고산지대에서 채취한 싸리나무로 5백여 자루의 싸리비를 만들어 관내 기관과 학교에 배부했다. 봉화군은 거리가 깨끗할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부정부패가 자랄 틈이 없을 것 같다. 싸리비로 싹싹 쓸어버릴 테니까.

싸리나무는 농가에 유용한 일용품을 만드는 재료다. 다래끼, 바지게, 소쿠리, 바구니, 삼태기는 모두 싸리나무가지로 만든다. 싸리나무는 서민 생활과 너무 가깝다. 반세기 전만 해도 대부분 농가에서는 싸리를 얽어 사립문을 세웠다. 서당과 학교에서는 훈육용으로 회초리를 쓰는데, 재료는 싸리나무였다.

암행어사로 나선 박문수가 경상도 첩첩산중에서 길을 잃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외딴집을 찾아 하룻밤 쉬어갈 것을 청했다.

젊은 아낙은 남편이 출타 중이라 어렵다고 했으나, 박 어사가 간곡하게 부탁하여 허락을 받았다. 박 어사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여인에게 다가가 껴안으려 했다.

여인은 박 어사를 크게 꾸짖고 회초리를 가져와 피가 나게 종아리를 쳤다. 박문수는 그 뒤부터 여인의 회초리를 가슴에 품고 살면서 자신을 경계했다고 한다.

암행어사 제도가 처음 도입되었을때는 ‘암행어사 출두야!’하는 소리에 산천초목이 흔들렸다. 백성들은 환호했고 조정은 튼튼했다. 당쟁과 사화가 이어지고 세도정치가 뿌리를 박으면서 암행어사도 퇴폐의 길을 걸었다.

싸리나무를 생각하면 고향에 사는 사촌 아우 정욱이가 떠오른다. 친구들은 모두 고향을 등졌지만, 그만은 홀로 마을을 지키고 있다. 뒷동산을 지키는 싸리나무같이 억세게 붙박고 산다. 그가 사는 모습이 부러울 때가 있다.

사회악을 쓸어내는 싸리비가 되겠다며 경찰, 검사, 판사, 공직자로 임용된 사람들이 세월의 흐름 속에 몽당비로 전락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을 위해서나 국가사회를 위해서나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총선이 끝나고 3백 명의 선량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며 국회에 나갔다. 과연 몇 명이나 제대로 싸리비 노릇을 할 것인지…….

김현준 수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기미잡티레이저 대신 집에서 장희빈미안법으로 얼굴 잡티제거?
  • 군산 나포중 총동창회 화합 한마당 체육대회 성황
  • 대한행정사회, 유사직역 통폐합주장에 반박 성명 발표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만원의 행복! 전북투어버스 타고 누려요
  • 메디트리, 관절 연골엔 MSM 비타민D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