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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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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조건
  • 전민일보
  • 승인 2014.03.27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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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록 농촌지도사

 
     
 
러시아 경제가 지금 보다 훨씬 궁핍했던 시기, 러시아에 의료봉사를 다녀온 동생에게 물었다. “그래, 네가 본 러시아는 어때?” 그다지 큰 의미 없이 물었는데 동생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가난하지만 자존심이 살아있고 노점상까지도 모두 책을 보고 있는 모습에서 러시아의 저력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아, 그렇구나.’ 난 어느 순간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동생이 보고 온 러시아는 교향곡 [레닌그라드]를 작곡한 쇼스타코비치의 조국이었다는 사실을 난 잠시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침공한 히틀러는 무려 900일간 레닌그라드를 봉쇄한 후 무차별 포격을 가한다. 이때 나치군에게 포위된 고향을 지키기 위해 쇼스타코비치는 의용군에 지원하지만 체력미달로 입대가 거부된다. 결국 그는 총 대신 펜으로 자신의 조국과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빠른 속도로 써내려간 교향곡 [레닌그라드]는 1941년 12월 27일 완성되고 마침내 1942년 3월 5일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이 이뤄진다. 이 소식을 접한 연합국은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 악보를 마이크로필름에 담아 군용비행기로 공수한다.
그리고 1942년 7월 19일 토스카니니의 지휘아래 미국 뉴욕에서 초연이 이뤄진다.
이 곡을 접한 연합국 음악계의 반응은 놀라움과 찬사 그 자체였다. “이런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민족을 히틀러가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이제부터다.
교향곡 [레닌그라드]를 나치군에게 포위된 전쟁터인 레닌그라드에서 공연하기로 한 것이다.
20세 공군 중위 리트비노프가 목숨을 걸고 운반한 악보는 1942년 7월 2일 레닌그라드에 도착한다. 하지만, 나치군의 봉쇄로 연주할 악기와 연주자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연주에 필요한 인원은 105명인데 연주가능인원은 겨우 15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지휘자 카를 엘리아스베르그는 시정부와 군당국 설득에 나선다. 그 결과 시정부는 거의 아사상태에 있던 단원들에게 특별배급을 제공하고 군에서는 악기를 다룰 수 있는 모든 병사에게 출장권을 배부한다. ‘엘리아스베르그 오케스트라 출장권’이다. 그렇게 합류한 병사 중엔 두 다리가 잘린 부상병도 있었고 굶주림에 다리가 부어 신발도 신을 수 없는 병사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봉쇄 355일째인 1942년 8월 9일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그랜드홀에서 역사적인 공연이 이뤄진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그는 이날 전쟁으로 파괴된 고향과 고통에 신음하는 인민을 위해 이런 헌사를 바쳤다. “파시즘과의 투쟁, 다가오는 승리 그리고 나의 고향 레닌그라드에 이 곡을 바친다.” 종전 후 엘리아스베르그를 찾아 온 독일 관광객은 이런 말을 남겼다. “그날 라디오로 7번 교향곡을 들으며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전쟁에서 질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는 굶주림과 공포 심지어 죽음까지 극복할 수 있는 당신들의 힘을 느꼈습니다.” 그랬다. 러시아는 잘 먹고 잘 입지 못해도 1년에 한 번 볼쇼이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었다. 가난하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고 노점상을 해도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가난하다고 해서 후진국 국민이 될 수 있겠는가. 그들 보다 경제적으로 부자인 그 어떤 국민이 감히 그런 오만한 말을 뱉을 수 있단 말인가.
[지고이네르바이젠],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아를르의 여인] 그리고 교향곡 [신세계] 모두 고등학교시절 음악선생님이 선물하신 곡들이다. 음악 감상 시간과 음악회 관람을 점수에 반영하신 선생님께 지금도 감사함과 부끄러움이 함께한다. 선생님의 그런 노력이 없으셨다면 내 자신 얼마나 황량할까. ‘선진국의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답은 여러분 각자의 몫이다.
사족 하나, 힙합으로 다시 태어난 교향곡 [레닌그라드]는 여러분이 보는 유명한 광고 배경음악이 되어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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