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8 00:13 (일)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상태바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 전민일보
  • 승인 2023.12.19 0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자에게 12월은 늘 이별의 달이다. 물론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가질 거라고 본다. 하지만 필자에겐 조금 더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 행정의 예산과 관련된 일들을 많이 하다 보니, 12월이면 대다수 사업이 마무리된다. 그렇게 되면, 길게는 1년간 사업을 통해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적어도 일로써는 작별을 고하게 된다. 물론 그런 사람들과는 말 그대로 인연이 남는다. 다음 해, 또는 몇 년이 흘러도 다시 만나니 반갑고 서로의 성장을 마주하며 웃음 짓곤 한다.

조금 다른 경우의 이별도 있기는 하다. 12월에 사업이 종료되니, 해당 사업을 위해 뽑았던 전담 인력 또는 기간제 인력과도 대다수 12월에 작별을 고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과의 이별은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 좋았던 인연을 곁에서 계속 함께 하려면, 다시 몇달을 기다려 달라 요청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래봐야 다시 줄 수 있는 건 역시나 기간제라는 직책이다. 그 정도밖에 줄 수 없으면서 곁에 붙잡아 두는 건 매우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능한 좋은 자리를 찾아가길 소망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바람이 있다면, 가능한 이 지역 내에서 당신의 꿈을 펼쳐갔으면 한다는 것.

개인적으로 올해 12월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필자 또한 그런 사람의 하나겠지만, 필자와 가깝게 지내면서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해 온 사람들이 올해 12월을 끝으로 자리를 내려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분야와 직책, 혹은 나이를 떠나 우리 지역이 어떻게 변해갔으면,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고민과 해법을 나누던 사람들이 이제 그 자리를 떠나게 된다. 줄줄이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필자는 팔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사실 그보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떠나가는 사람들 대다수가 아픈 기억을 안고 떠난다는 거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갔으면 좋겠는데, 꽃길 따윈 놓이지 않는다. 떠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고 싶어진다. 그 지역 방향으로는 오줌도 싸기 싫어진다. 이루지 못하니 안타까워서 더더욱 말이다. 지역이 어떻게 변해갔으면,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더 많이 고민했을수록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주는 안타까움은 크다.

필자에게 한 번씩 문자를 보내주시는 과장님이 계신다. 물론 단체 문자다. 그래도 문장 하나, 단어 하나도 세심하게 골라 쓴 것이 분명하다. 그분의 문자는 항상 같은 내용으로 끝난다. “우리 지역의 인구가 더 줄어들지 않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라고. 짧은 문자지만,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씁쓸한 마음 하나도 불쑥 고개를 내민다.

23년 12월 11일 자 보도에 따르면 전주시의 인구가 65만 명 선이 무너졌다고 한다. 한때 30만을 마지노선으로 잡았던 익산시의 인구는 2023년 11월을 기준으로 27만 명을 간신히 지키고 있다. 물론 고령화와 저출산 등의 문제로 인구의 감소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고, 그 해법 또한 어느 한 분야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유럽 흑사병의 3배 수준이라는 인구감소의 속도는 정말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저런 방식의 셈법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구를 숫자로 보는 것, 사람이 지역에서 들고나는 것을 전출과 전입 대비의 증감으로 생각하는 건, 왠지 매출에서 매입을 제외한 순수익의 계산 마냥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역에서 들고나는 것은 사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가치의 움직임이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중략)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고 적었다. 맞는 말이다. 한 사람이 지역에 들고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과 꿈이 들고나는 것이고, 그 사람이 만들어 갈 수도 있는 지역의 미래가 들고나는 것이다. 넓게는 그 사람과 관계된 모든 사람의 꿈과 마음이 이를 계기로 지역과 관계를 맺거나 끊는 일이니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닌 거다.

물론 필자 주변에서만 벌어지는 협소한 상황일 수도 있지만, 떠나가는 사람들 대다수가 해당 지역에 대해 아픈 기억을 안고 떠난다. 소모품처럼 쓰이다가 내구연한이 끝난 물건처럼 대해지는 까닭이다. 아니 오히려 제쓰임을 다했다면, 그렇게 아쉬움은 없을 것이다. 제 쓰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던 까닭이다. 또는 지역에서 제 쓰임을 찾지 못한 까닭이다. 정량적으로 표현되는 숫자의 증감 속에는 사실 ‘1’ 또는 ‘2’로 표현하면 결코 안 될 좌절과 안타까움, 후회가 들어있다.

물론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만나게 되면, 언젠가는 헤어짐 또한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와 같은 이별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거자필반(去者必返)’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어떤 환대(歡待)를 준비해야 할까.

전승훈 문화통신사협동조합 전략기획실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군산 나포중 총동창회 화합 한마당 체육대회 성황
  • 기미잡티레이저 대신 집에서 장희빈미안법으로 얼굴 잡티제거?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대한행정사회, 유사직역 통폐합주장에 반박 성명 발표
  • ㈜제이케이코스메틱, 글로벌 B2B 플랫폼 알리바바닷컴과 글로벌 진출 협력계약 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