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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임성 대표 “연탄 밥만 50년”···전주의 온기 지키는 실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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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임성 대표 “연탄 밥만 50년”···전주의 온기 지키는 실향민
  • 이용 기자
  • 승인 2023.12.1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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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유일 연탄공장 '전주산업'
-치솟는 운송비에 '현상유지' 어려워
전주산업 근로자가 지난 6일 연탄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이용기자]
전주산업 근로자가 지난 6일 연탄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이용기자]

연탄 소비량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전국에 가동 중인 연탄공장은 25개였지만 올해 4곳의 연탄공장이 폐업하며 지금 가동 중인 전국 연탄공장은 21곳이다. 

지난 6일 전북 유일의 연탄공장인 전주산업을 찾았다. 연탄공장에는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꼭두새벽 팔복동 공단에서 전주산업은 다른 어느 곳보다 먼저 불을 밝혔다.

공장에 들어섰을 땐 설비 문제로 잠시 연탄 생산이 중단돼 공장 내부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기자와 만난 박석민 관리이사는 기계 문제로 연탄 생산이 늦어지면 공장은 물론 새벽부터 모여든 배송 기사들도 오전을 공치게 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겨울로 들어선 요즘, 전주산업에서는 하루 4만에서 6만장의 연탄을 출하한다. 얼핏 수량이 많아 보이기도 하지만 지난 2017년과 비교하면 ‘반토막’에, 그나마 출하량이 매년 10%씩 빠지는 상황이라는 게 박 관리이사의 설명이다.

기사들이 대기실로도 사용하는 사무실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오갔다. 기사들은 ‘아들이 40이 넘도록 장가도 안 가서 속을 썩이지만 대기업에 취직해 간부로 일한다’는 이야기, ‘6살 난 손녀를 아이돌로 키울 계획인 며느리가 돈 달라고 하는 게 힘들지만 아이돌 해도 될 만큼 손녀가 예쁘다’같은 ‘반전형’ 자식·손자 자랑을 주고 받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박 관리이사는 공장 곳곳을 매서운 표정으로 돌아보는 작은 체구의 노년 신사를 가리키며 ‘저분이 이 공장의 대표님’이라고 귀띔했다. 

어느 순간 기계가 다시 가동되고 한결 가벼워진 표정의 박임성 대표이사를 만났다. 익숙한 전주 억양이 아닌 옅은 이북 사투리가 인상적이었다. 

“내가 46년생이니까 이제 79살이에요. 지금 이북이 된 강원도 고성에서 내가 6살 때 피난을 나왔지요.”

어린 나이에 전쟁통에 부모님을 잃고 월남한 박 대표는 속초, 서울을 거쳐 충북 제천에서 연탄 일을 처음 시작했다. 이때가 1973년, 올해로 박 대표가 연탄 일을 한 지 딱 반백 년이다. 

“내가 전주를 87년도에 왔어요. 87년도 12월달에 이걸 인수해갖고···부도도 한 번 났고 또 경매를 받아가지고 죽을 고생을 했어요. 이거 하는 것도 뭐 30년을 훌 넘었어요.”

박 대표가 처음 전주에 공장을 인수했을 때 연탄 산업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전주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전라북도에 연탄공장이 14개가 있었어요. 남원, 익산, 전주, 김제, 군산 뭐 다 있었는데 이제 하나하나 없어져서 지금은 뭐 이제 다 없어졌지요.”

생산된 연탄을 배송을 위해 화물차에 옮겨싣고 있다. [사진=이용기자]
생산된 연탄을 배송을 위해 화물차에 옮겨싣고 있다. [사진=이용기자]

이제 전주산업은 전라북도 유일의 연탄공장일 뿐 아니라 광주·전남과 충남 일부 지역을 포함해도 유일한 연탄 공장이다. 올해 폐업을 선언했던 광주의 남선연탄이 지자체 등의 요청으로 임시로 가동을 재개했지만 주 3일만 운영하는 말 그대로 ‘반쪽짜리’ 운영이다. 

최근 대전에서도 연탄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전남·광주·충남에서도 여기로 연탄을 받으러 온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여수·목포 다니는 사람들은 남선공장이 일주일에 세 번밖에 안 하니까 일부 나한테 왔고 충남 보령도 문을 닫아서···그럼 충남·전라남북도에 이제 내가 하나만 남은 거예요.”

연탄 공장이 잇달아 문을 닫는 이유는 뭘까? 박 대표는 연이은 연탄공장 폐업이 단순히 수요 감소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탄이 철길로 왔어요. 철길로 해서 우리 공장까지 도착하는 가격이 톤당 17만원이었어요. 그런데 코레일이 장성광업소·화순광업소 철길을 없애 버렸어요.”

지난 2014년 코레일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무연탄 수송역을 전국 19개에서 8~10개 역으로 축소하며 북전주역 등의 무연탄 수송을 중단했다. 지난 2016년에는 대한석탄공사 전용선이었던 화순선이 계약 종료되며 화순탄광 화물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그래도 당장 문을 닫을 수는 없으니까 자동차로 실어와야 해요. 6시간 가고 6시간 와서 한 대가 12시간을 운행하는데 그 비용을 내가 지불해요. 그런데 연탄 가격은 639원으로 나라가 정해놨으니 마이너스가 날 수밖에 없어요.”

정치권·지자체 등의 무관심에 대해서도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정치인들이) 맨날 연례행사처럼 연탄 자원봉사 같은 거 하는데 정작 연탄 생산을 못하게 생긴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 조치가 없어서 답답합니다.”

지금 연탄 수요자들은 저소득층 연탄 보조사업으로 지원되는 ‘연탄쿠폰’등을 통해 난방비를 지원받는다. 연탄 배송 기사들도 배송비를 보장받지만, 정작 연탄 공장은 원료 운송비를 고스란히 떠안는 상황이라 더 이상 어려운 이웃에 대한 사명감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석탄 등 탄소배출이 많은 화석연료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데 부정적인 여론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석탄 등 화석연료 보조금 비율은 0.08%로 세계 평균인 0.46%에 비해 크게 낮아 저소득층 연료인 연탄 생산을 위한 보조금 마련 여력이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저소득층을 위한 연료 생산 보조금 신설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 화석연료 보조금은 석탄가격안정지원금·연탄가격안정지원금·무연탄발전지원금·유가보조금 등이다. 

성형을 거친 연탄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나오고 있다. [사진=이용기자]
성형을 거친 연탄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나오고 있다. [사진=이용기자]

“그래서 고민이 많아요. 기자분들이야 사진만 찍고 가면 그만이지만 왜 힘든지를 정확하게 보도 해줘야 돼요. 현상 유지라도 해야되니까...”

박 대표가 무리를 해서라도 현상유지하도 해야하는 이유는 공장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삶이다.

“우리 생산 직원들도 있지만 생업을, 차를 가지고 운송해서 벌어 먹고사는 생업을 하는 사람들, 이 공장이 닫으면 다 실업자가 되는 거예요. 이젠 어디 가져올 데가 없어. 이제 경주나 서울이나 이쪽밖에 없거든.”

조금 전 사무실에서 만난 예쁜 손녀 키울 돈을 번다는 기사님과, 불의의 일로 큰 돈을 빌렸지만 갚아나가고 있다는 기사님들의 얼굴이 스쳤다. 조금이나마 박 대표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 대표에게 함께 월남한 가족이 있느냐고 물었다. 

“누님들 둘, 형 하나 이래서 4남매가 넘어와서 지금은 이제 작은 누님 한 분만 혈압으로 쓰러져서 요양병원에 계세요. 독신···거의 뭐 독신이지요”

‘독신’이라는 말을 되뇌이던 박 대표는 문득 사무실에서 일하는 관리이사 이야기를 꺼냈다. 

“저게 내 아들놈인데 저놈이 공부를 못했어요.”

박 대표는 인터뷰 중 처음으로 진심이 느껴지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전북대를 나와서 기자님도 잘 아는 그 대기업에 들어가고 장가 가서 애도 낳았어요. 재주가 많고 성실하거든요. 몇년 전에 내가 내려와서 일하라고 했어요.”

처음 공장에 도착해 기사 대기실에서 목격한 ‘반전형’ 자식 자랑에는 박 대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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