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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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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은 어디에나 있다
  • 전민일보
  • 승인 2023.02.24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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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탈레반이 바미안 석불을 폭파했다. 유일신을 거역한 우상을 더 이상 보고 둘 수 없다는 것이 탈레반의 논리였다. 동서 역사의 변천을 목격했던 높이 55m의 서대불과 그보다 약간 작은 동대불은 탈레반이 퍼부은 포탄과 다이너마이트에 흙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8세기 초 바미안을 지나간 혜초도 목격했던 바로 그 석불이다. <왕오천축국전>에 등장하는 바미안의 모습이다.

“자불리스탄에서 이레를 가면 범안국(바미안)에 이른다. 이 나라 왕은 토착인과 같으며 다른 나라에 귀속되어 있지 않다. 강한 군사가 많아서 다른 나라들이 감히 내침하지 못한다. 의상은 모직 옷과 가죽 외투, 펠트 웃옷을 입는다. 이 땅에서는 양과 말, 모직물 등이 나며 포도가 대단히 많다. 이 땅은 눈이 오고 매우 추우며 사람들은 다분히 산에 의지해 살아간다. 왕과 수령, 백성들은 삼보를 매우 공경하고 절도 많고 승려도 많으며 대승법과 소승법이 행해진다. 이곳의 말은 다른 나라와 같지 않다.”

불법(佛法)의 땅은 어느새 알라의 신성한 영역이 되었다. ‘알라후 아크바르’탈레반이 보여주듯 오늘 우리에겐 어제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파괴할 힘이 있다.

오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그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든다 한들 그 누가 거기에 저항 할 것인가? 세종(世宗)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어용문학으로 비난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표현의 자유이겠지만 그것을 불살라 역사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것은 야만이라는 말 외에 달리 찾을 마땅한 단어가 없다. 그럼에도 오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옛 것을 지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성군이라는 세종도 예외가 아니었다.

세종 재위 당시 일본은 조선에 대장경(大藏經)을 집요하게 요구한다. 사신이 단식을 감행할 정도였다. 마침내 일본은 팔만대장경판까지 요구한다. 이에 대한 조선의 대응은 어떠했을까?

1423년(세종 5년) 12월 25일 조선왕조실록 기사에는 일본 국왕(쇼군) 사신 규주·범령 등 135명이 토산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이때 세종과 대신들이 나눈 대화가 이상하다.

“임금이 대장경판은 무용지물인데, 이웃나라에서 청구한다 하여 처음에 이를 주려고 하매, 대신들이 논의하여 말하기를, ‘경판은 비록 아낄 물건이 아니오나, 일본이 계속 청구하는 것을 지금 만약에 일일이 좇다가, 뒤에 줄 수 없는 물건을 청구하는 것이 있게 된다면, 이는 먼 앞날을 염려하는 것이 못됩니다.’고 하기 때문에, 임금이 그 청구에 응할 수 없다고 답한 것이다.”

성리학의 도그마적 강박증은 탈레반과 너무도 닮았다. 성리학적 정통성에 비춰 불교는 사악한 이단(異端)에 불과하다. 그런 이유로 성군이라는 세종조차 아무렇지 않게 대장경판을 무용지물이라 말하고 있다. 다만 세종의 이런 언급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하는 전공학자도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대다수 신하들은 일본과의 평화를 위해서 대장경 따위는 줘버려야 한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반대 논리조차 대장경의 가치를 논하는 내용은 없고 필요 없는 대장경을 일본에 주고나면 또 다른 요구가 빗발칠 테니 줄 수 없다는 일견 타당하지만 종국적으로는 해괴한(?) 논리만 남았다.

만일 일본이 조선 조정에 대장경판을 받는 것이 불가역적이고 완전한 최종 요구임을 증명했다면 대장경판은 해인사가 아니라 일본의 어느 곳에 자리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이것이 탈레반의 논리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세상은 언제나 다양한 형태로 발현하는 정의감의 과잉에 의해 병들어왔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에 반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 그의 도덕률에 반한다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오늘 우리가 평가하는 과거의 그 모든 것들은 도마 위에 자리한 물고기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문제는 오늘의 우리는 미래세대의 평가 앞에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예수 생존 당시 피라밋을 보러왔던 로마인의 낙서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피라밋 말고는 볼 것이 없다.” 오늘 우리에겐 피라밋이 무엇인가?

그리고 부숴버려도 될 것은 무엇인가? 탈레반은 어디에나 있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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