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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나무, 빛을 모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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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나무, 빛을 모으다
  • 전민일보
  • 승인 2023.02.22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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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로 들어온 햇살을 모은다. 좁은 건물 새로 보이는 태양을 결코 놓칠 순 없다. 태양에 경배하는 자세로 온몸 가득 햇살을 마신다. 한 상자의 표고버섯에도 햇살을 모으기 시작했다. 채소 물을 만들기 위하여 필수인 버섯은 기계나 찜통에 말리면 효능이 없다. 진짜 생 햇살을 모아야 한다. 오전에 버섯을 사오면 오후 내 햇볕이 오래 드는 아파트 단지 뒤에 자동차를 세워두고 지붕 위에 버섯을 넌다. 가을이면 아낙네들은 햇살 모으기 바빠진다. 옆 차에도 보니 차 뚜껑 위에서 호박도 햇살을 모으고 있다. 한나절 햇살을 머금은 버섯이 굳어지면 거실에서 몇 날 햇볕을 더 모으면 된다. 집안에서 햇빛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나도 버섯 바구니를 들고 햇빛을 따라다닌다.

겨울나무들은 맨살이 되어 가지 끝까지 햇살을 모은다. 은행나무 가로수도 사방으로 팔을 뻗어 구석구석 햇살을 받는다. 추운 줄도 모르고 설한풍을 견디며 빛의 에너지를 모아야 봄부터 새싹을 키우고 열매를 키울 수 있지 않은가. 한겨울이 되면 축복처럼 빛 부신 눈꽃을 피울 수 있는 것도 비움으로 누리는 은혜이다. 사랑의 빛을 모아서 추운 겨울 동안 입고 열정을 품어야 한다. 태양을 떠나서는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다.

나무는 땅속에 뿌리를 박고 하늘로 뻗어 오른다. 땅을 사이에 두고 나무는 대칭으로 뿌리를 뻗어 간다. 높이 솟아오른 나뭇가지의 한쪽이 시들해지면 그 부분에 해당하는 뿌리가 좋지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나무는 수직 운동과 수평 운동을 한꺼번에 하면서 성장하고 자신을 확대한다. 지표면을 경계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여 하나인 사랑으로 완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둘로 나뉜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듯한 나무는 완벽한 생명 이미지의 원형 같다. 나무의 생태가 바로 우주 속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과 동일시되어 인간 역시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된다.

북송의 휘종황제는 그의 대관다론(大觀茶論)에서 차나무를 일컬어 ‘땅에 머리를 박고 거꾸로 자라서’ 천지의 기운을 차지하고 산천의 영기를 모아, 가슴이 막힌 것을 씻어서 없애며, 맑고 온화한 경지에 이르게 한다고 하였다. 서양에서도 사람은 거꾸로 선 나무라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하였단다. 16세기 신비주의자 야곱 뵈매도 인간을 ‘거꾸로 선나무’라 했다.

사람도 살아가는 양식을 하늘과 땅으로부터 받는다. 하늘을 향해 곧추서있는 머리에 붙은 눈과 귀로, 코와 입으로 천상의 양식을 흡수한다. 움직이는 나무의 가지인 손과 발은 양식을 지상에 퍼트리는 도구이다. 움직이는 도구를 지닌 사람은 나무와 더불어 꽃과 열매가 가득한 지상낙원을 만들 수 있다. 우리 안에 나무가 잘 자라고 있을 때만 그렇다.

사람이 거꾸로 선 나무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우주나무였다. 예수자신이 우주나무가 되었고 석가도 세계에 헌신함으로써 한 그루의 우주나무가 되었다. 신성이 오르내리는 통로에 존재하는 우리도 모든 곳에서 한 그루의 우주나무가 된다. 내가 우주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본래 우주의 형체는 끝도 없이 공(空)하여 알 수 없는 기운으로 가득찬 것 같다. 세상에 작은 우주나무가 태어나면 햇빛의 열정과 달빛의 냉정함으로 바람과 구름을 일으키는 가운데 온갖 풍상을 겪으며 자라는 것일까. 우리가 작은 우주나무라면 만상과 함께 본래 우주나무의 배꼽에서 떨어져 나왔을 것 같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대생명의 인드라망에 얽혀서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생명은 성장하며 순환한다. 단지 내가 생명의 질서와 순리를 잘 감지하지 못 할 뿐이다.

겨울나무처럼 나도 마음의 옷을 훌훌 벗고 햇살을 모은다. 겨울 동안 나목이 수행하는 것처럼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단련하고 휴식하면서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동면하는 동물처럼 적멸(寂滅)의 힘을 받아 봄에 새로 솟아나는 새싹처럼 생기하면 좋겠다. 얼마나 수행하여야 우주나무의 내 자리를 도로 찾을 수 있을까.

본래 사람은 하늘의 별이었다고 누가 노래했던가. 신비에 가린 우주나무의 한 가지에서 빛나던 별들이 어느 날 제각각 땅에 떨어져서 저마다 반짝이고 있는 것인가.

아무리 흉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세상이지만 별빛의 반짝임이 아직 남아 있어서 따뜻하리라. 반짝이는 빛이 다 꺼지기 전에 어서 햇살을 많이 모아야겠다. 다시 아득한 날에 우주나무의 별이 되어 하늘에서 반짝이려면 말이다.

조윤수 수필가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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