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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惡役)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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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惡役)을 위한 변명
  • 전민일보
  • 승인 2019.10.1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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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을 받게 된 한국에 해고의 칼바람이 휘몰아쳤다. 당시 인사 담당을 했던 한 인물이 칼자루를 쥐게 되었다. 살생부가 된 그의 결정, 그리고 그렇게 떠나간 사람들. 모든 일이 끝난 후 인사 담당자는 사표를 냈다.

“내 손에 동료들의 피를 묻혔는데 내가 어떻게 여기에 남을 수 있겠습니까?”

때로 공동체를 위해 누군가 해야 할 말이 있고 해야 할 행동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선뜻 하겠다는 사람은 없다. 누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겠는가.

페리클레스와 같이 담대하게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은 대단히 예외적인 것이다.

플루타르코스가 <영웅전>에서 그리스의 위인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가 흠결이 없다고 말한 사람은 페리클레스가 유일하다. 페리클레스에게서 확일 할 수 있는 사실 한 가지는 환호와 호평을 앞에 두고 비난과 악담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한국사에도 비슷한 인물이 있다.

조선 태종(太宗)은 정몽주(鄭夢周)와 이복동생, 처남은 물론 세종의 장인까지 죽이고 장모는 관비로 만들어버린 냉혹한 인물이다. 또한 자신을 도운 공신들을 모조리 숙청해버린다.

태종은 인간의 도리도 모르는 악인인가? 만일 태종이 선한 인물로 남았다면 어떤 일들이 발생했을까. 호랑이 같은 외삼촌과 공신들의 위세 속에 왕이 된 세종은 허수아비가 되었을 것이다. 해동요순(海東堯舜) 시대라는 세종의 빛나는 성과는 그런 역사적 발걸음 속에서 태동했다.

태종은 힘 있는 자에겐 난폭했을지 모르지만 백성에겐 성군이었다. 관련 해 세종의 위대함에 의문을 던지는 학자들은 세종을 ‘사대부만의 성군’이라 폄하한다. 노비제(奴婢制)에 대한 세종의 인식 때문이다. 세종이 노비에게까지도 출산휴가를 줬다며 찬양하는 목소리에 대해 그들은 이렇게 반박한다. ‘조선의 노비제도를 공고화한 책임이 세종에게 있다.’

노비는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의 최대 물적 재산이었다. 퇴계 이황(李滉) 같은 사람조차 수백명의 노비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것은 노비제도가 그만큼 민감한 시대적 사안이었음을 얘기해준다. 개혁 난제였던 셈이다.

태종이 얼마나 영민한 군주인지는 노비제에 관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부분에서는 오히려 아들 세종이 퇴보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천첩(賤妾)의 소생을 방역(放役) 하는 법은 따로 다른 의논이 있을 수 없고, 아비가 양인(良人)인 경우에는 아들도 양인이 되는 것이니, 종부법(從夫法)이 가(可)합니다.”라는 예조 판서 황희(黃喜)의 건의에 대해 태종은 이렇게 답한다.

“하늘이 백성을 낼 때에는 본래 천구(賤口)가 없었다. 전조(前朝)의 노비(奴婢)의 법은 양천(良賤)이 서로 혼인하여 천인(賤人)을 몹시 하는 일을 우선으로 하여 천자(賤者)는 어미를 따랐기 때문에, 천구(賤口)는 날로 증가하고 양민(良民)은 날로 줄어들었다. 영락(永樂) 12년 6월 28일 이후 공사 비자(公私婢子)가 양부(良夫)에 시집가서 낳은 소생(所生)은 아울러 모두 종부법(從父法)에 따라 양인(良人)을 만들고, 전조의 판정백성(判定百姓)의 예에 의하여 속적(屬籍)하여 시행하라.”

태종의 이 명령은 노비의 증가를 막고 양인을 늘리는 합리적이고 인도적 조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종이 이 조치에 역행하는 명령을 내린다.

바로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의 전면적인 시행이 세종대에 이뤄진다.

이를 통해 일천즉천(一賤則賤)의 원리가 시행됨으로써 노비가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애민 군주이자 한국사 최고 성군이라는 세종이 이 부분에서 왜 아버지 태종과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누구나 선한 모습으로 남고 싶어 한다. 그래서 더욱 악역은 빛이 난다. 악인이 아닌 악역을 맡을 수 있는 사람에게 소명의식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태종의 손자인 세조(世祖)도 노비제와 관련 아버지가 아닌 할아버지와 같은 길을 선택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또 다시 뒤집은 것은 성군이라는 성종(成宗)이었다.

악역은 때로 선한 인물의 빛을 능가하는 광채를 발휘한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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