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8 00:13 (일)
내친구 ‘합죽이’
상태바
내친구 ‘합죽이’
  • 전민일보
  • 승인 2016.04.19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부터 48년 전, 그 친구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나와 같은 반이었다. 그의 첫 인상은 빡빡머리에 눈이 크고 서글서글했다.

그런데 매우 가난했던지 졸업선배에게 물려받은 교복 윗도리가 무릎까지 내려왔고 광목천으로 된 검정색 교복은 이미 빛이 바래서 오히려 흰색이 돋았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어느 여름, 향토사단 예비군 동원 훈련 때였다.

군중들 사이로 눈만 깜박거리고 있는 그 친구를 발견했다. 나는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야~ 임마, 합죽아!”하고 크게 그를 불렀다. 그러자 그는 멈칫 놀라며 “어~ 그래, 혜성아, 오랜만이다”하며 머쓱해 했다. 입이 크고 안으로 들어간 모습을 빗대어 지은 별명이기에 그는 분명히 ‘합죽이’를 외모 콤플렉스로 느낄 텐데, 이름보다 먼저 튀어나와버린 별명!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왜 다들 그렇게 ‘개구리 복(예비군옷)’만 입으면 망나니가 되는지, 나도 밖에서 그를 만났더라면 젊잖게 “야 친구야, 오랜만이다”그랬을 텐데...

어쨌든 그 친구와 나는 그렇게 오랜만의 조우를 하고 동원훈련을 받았다. 훈련 마지막 날, 처음의 서먹함은 완전히 없어지고 우린 그냥 전우로 돌아가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막사에서 권커니 잣거니 소주를 거나하게 마셨다. (당시만 해도 음주를 비공식적으로 허용했다) 자정쯤 되자 여기저기 동료들이 곯아떨어졌고 나도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막 몸을 부리는 순간, 갑자기 입구 쪽에서 누가 가성(假聲)으로 “이○○” “이○○” 하며 내 부친의 함자를 불렀다.

그런데 직감적으로 ‘합죽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저놈이 첫날 내가 제 별명을 불렀다고 소심하게 복수를 하다니, 옹졸한 녀석!”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야, 합죽이, 입 닥쳐, 어디서 함부로!!”하고 나는 낮고 단호하게 1차 경고를 했다.

그런데 또 다시, “이○○”, “이○○”하며 약간은 빈정대는 투로 아버지의 함자를 불렀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건너편 침상으로 날아가서 합죽이의 귀싸대기를 사정없이 후려 갈겼다.

그건 나의 경고를 무시한 것도 있었지만 그 보다도 아버지는 우리의 은사이며 나에게는 존경을 넘어 신적 존재였다.

아버지는 6척 장신에 호랑이 선생님으로 소문 난데다가 선생님들도 무서워서 슬슬 피했고, 자식들도 3미터 옆에 접근도 못할 만큼 대단한 존재였다. 그런데 감히 “제깟 놈이 함부로 함자를 부르다니,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엉겁결에 눈에 불이 확 날만큼 얻어맞은 그 친구는 얼굴을 감싼 채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에 대성통곡하는 소리에 나가보니 그는 막사 한쪽 구석에서 퍼질러 앉아 울고 있었다. “그러게 임마, 왜 우리 아버지 함자를 함부로 불러?”그러자 친구는 “나는 사실 네가 너무 좋았고, 너의 아버지는 내가 정말 존경하는 선생님이야. 그래서…”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4학년 때 자기가 실수로 창문유리를 깼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유리 깬 사람 나오라고 했을 때 자기는 도저히 변상 할 돈도 없고, 집에 가서 말해봤자 쫓겨날 게 뻔해서 엄두가 나지 않아 맞아 죽을 셈 치고 숨어 있었는데, 내가 깼다며 나가니 ‘구세주’같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고마움을 지금껏 잊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쭙잖은 나의 우월감과 위선이 다들통난듯하여 너무 부끄러웠다. 사실 나는 그런 것을 즐겼었다. 당시는 수업료를 내지 못해서 집으로 쫓겨 가는 아이들이 허다했다. 그러니 유리를 깼다면 ‘대형사고’에 속하고 그 변제능력이 없는 친구는 무단결석을 하거나 심지어 부모가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깨지도 않은 유리창을 내가 깼다며 불쑥 나서는 순간, 나는 학급에서 ‘영웅’이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도 나중에 내가 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나를 더욱 선행학생으로 치켜 주실 테니까. 유리파손 ‘대리자수’ 사건은 내가 종종 써먹던 ‘선행을 가장한 나의 영웅 만들기’프로젝트의 ‘사기극’이었다.

나는 궁지에 몰린 친구를 이용해 동심(童心)과 선생님 마음까지 훔친 ‘영악한 사기꾼’이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서글서글한 그 친구의 눈에 맺힌 그렁그렁한 눈물에 대한 미안함보다, 친구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한 나의 모자람이 더 부끄러웠다.

아마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을 맘껏 부르듯이, 그 친구는 그때 그렇게 좋아하는 친구 아버지의 이름을, 선생님의 이름을, 그렇게 불러 보고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지금도 졸업식 때 개근상을 받아들던 그 친구의 교복팔소매가 어느새 팔꿈치까지 올라왔고, 무릎에 닿던 윗도리끝단이 허리춤위로 올라와 허리가 허옇게 드러나던 뒷모습이 너무도 시리게 떠오른다.

“친구야, 잘 살고 있지?”

이혜성 전북청소년자립생활관 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군산 나포중 총동창회 화합 한마당 체육대회 성황
  • 기미잡티레이저 대신 집에서 장희빈미안법으로 얼굴 잡티제거?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대한행정사회, 유사직역 통폐합주장에 반박 성명 발표
  • ㈜제이케이코스메틱, 글로벌 B2B 플랫폼 알리바바닷컴과 글로벌 진출 협력계약 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