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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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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민일보
  • 승인 2016.04.15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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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학기 개강한 날 서 있던 내 차를 뒤에서 받는 바람에 한 학기 내내 고생을 했다.

마음 같아선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도 받고 좀 쉬고 싶었지만 강의하는 과목이 교양과목이라 보강을 잡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통원치료를 받았는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육체적,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이렇듯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거나 운전하면서 한눈을 팔면 자신은 물론 애먼 사람까지 골땅 먹일 수 있다.

어떤 사물이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아름답게 보인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할 때도 적당히 물러서서 봐야 그림이 한 눈에 들어와 겉과 속을 다 들여다 볼 수 있다.

꽃도 마찬가지다. 너무 가까이에서 꽃을 보면 부분적인 속살만 볼 뿐 서로 어우러진 조화와 균형의 미를 볼 수 없다.

산도 마찬가지여서 가까이 보면 나무만 시야에 들어오지만 거리를 두고 보면 숲 전체를 볼 수 있다.

우리가 세상살이를 하면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면 편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승부욕 때문에 이기고 지는 것에 너무 집착하면 불안해진다. 돈 벌 욕심에만 눈이 멀면 돈보다 소중한 것을 잃기 쉽다. 진리나 정의가 아니라면 내 고집을 슬그머니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면 상대를 높이고 덤으로 내가 더 높아질 수 있다. 내 기준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람을 만나거나 사물을 대하면 세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사람 사이에 맺은 관계 역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 바라봐야 간절하고 오래 간다. 만남은 어떤 거리를 두고 유지하느냐에 따라 사랑의 끈이 될 수 있고 서로를 속박하는 오랏줄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죽고 사는 문제이다. 사는 것만큼 간절한 게 없고 죽는 것만큼 절박한 게 없다.

죽음보다 가파른 절벽이 없고 까마득한 절망이 없다. 그러므로 죽는 문제가 아니라면 아침 안개 같고 가을 풀잎 같은 우리 삶을 아등거리며 살 필요가 없다.

우리는 자신과 가까이 있는 사람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그 사람이 희망적인 언어를 쓰면 내 자신도 희망적인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이 절망적인 생각을 하면 내 자신도 절망적인 사고를 한다. 숫돌이 칼날이나 낫끝을 잘 들게 갈 듯이 자신과 가까이 있는 사람은 내 삶의 날을 세워주는 숫돌이다.

숫돌이 닳아 휘었거나 무디면 칼날이나 낫 끝을 예리하게 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만남의 거리 안에 좋은 이웃을 많이 두고 살아야 한다.

산에서 혼자 자라는 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땅 밑을 파고 들면 나무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뿌리를 서로 연결하여 공생하고 있다. 풀도 마찬가지다. 풀은 서로 거리를 두고 일사불란하게 한 몸으로 엮여 있다.

풀뿐만이 아니다. 논에서 자라는 벼도 서로 몸을 한 데 묶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란다. 그래서 이들은 웬만한 바람 앞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는다.

설령 쓰러질지라도 곧 바로 일어선다. 이들에게 일정한 거리는 결속을 만드는 힘이자 생명을 살리는 원천이다.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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