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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밤 벚꽃길을 거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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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밤 벚꽃길을 거닐며
  • 전민일보
  • 승인 2016.04.12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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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님, 보름달이 참 휘영청 밝네요!”

어제는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일을 하다가 늦은 퇴근을 하는데 안내도우미가 하늘의 풍경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가로수 길에는 하얀 목련꽃이 학처럼 피어있었고요. 그 꽃을 생각하면서 갑자기 집에 있는 아내 생각이 났습니다.

꽃철이라고 꽃이 만발한데 아내를 데리고 아직까지 꽃구경 한 번을 못 갔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이 밤 9시쯤 되었을까요. 제가 아직 저녁밥을 먹지 않았다고 했으니 아내는 그때까지 저녁밥도 먹지 않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쉰 중반의 제 나이가 되면 집이 곧 아내가 되고 아내가 곧 집이 됩니다. 그래서 아내 없는 집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얼마 전에 늙은 아내를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낸 어느 노 시인은 아내 잃은 슬픔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비었을 뿐인데 세상이 온통 비어버린 것 같다고. 온 세상에 꽃이 가득 피었는데 어떤 꽃도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고. 그래서 한 사람을 잃으니 세상을 잃은 것 같고, 세상 사는 의미가 없어졌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그 한 사람이 ‘어머니’가 되지만, 나이가 들면 그 한 사람은‘아내’가 됩니다. 그래서 나이 들어 아내라는 존재는 그냥 한 사람이 아니라 온 우주가 되기도 하고 온 세상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아내가 요즘 외롭다고 합니다.

서방인지 남방인지 하는 사람은 주중이나 주말이나 바쁘다는 이유로 밖으로만 돌고, 남들은 꽃구경도 가고 야외로 피크닉도 가는데 자신은 과부와 다름이 없다며 푸념을 했습니다. 좀처럼 그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지요.

아내의 그 말이 며칠째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날 늦은 퇴근을 하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옷을 두껍게 입고 대문 밖으로 잠깐 나오라고. 그렇게 영문도 모르고 대문 밖으로 나온 아내를 그대로 납치(?)해서 매화꽃이 활짝 피어있는 전주동물원매화숲까지 달렸습니다. 보름달 아래 핀 밤매화를 보기 위해서.

아내와 함께 달빛 아래 별빛 아래 꽃길을 걷는데 꽃도 달도 별도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처녀 때 저에게 납치되어보고 32년 만에 처음으로 납치되어 본다며 저의 팔에 매달려 깡충깡충 좋아라 했습니다.

밤에 핀 야화(夜花). 참 이상한 것은 꽃도 여자도 낮에 보는 것보다 밤에 보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그날 밤에 아내는 이런 납치라면 백 번이라도 당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여자들의 로망이라나 어쩐다나...

이번 주에 퇴근하시면 사모님을 납치(?)해서 꽃구경 한 번 가시기 바랍니다. 가까운 공원에 가면 하얀 목련이 학처럼 피어있을 것이고, 조금 있으면 소양이나 진안 마이산길에도 밤벚꽃이 구름처럼 피어날 것입니다.

밤에 그 꽃길을 걸으며 옛 추억을 더듬어 보면 아내의 행복과 가정의 평화가 멀리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제 꽃철입니다. 겨울을 참고 견딘 세상의 모든 나무에 꽃이 피고 잎이 나듯이, 우리 마음 안에도 이 봄에 새 잎과 새꽃을 피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장 고운 빛깔과 가장 고운 향기로 말이지요.

송경태 시각장애인 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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