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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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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마음
  • 전민일보
  • 승인 2014.04.24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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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미 전북문화관광해설사·행촌수필문학회장

아주 오래 전 네 살 된 막내를 찾아 한나절을 헤맨 적이 있다. 아무 일도 없이 아이는 내 품에 안겼으나 부르튼 내 아래위 입술은 한 달이 넘도록 갈아 앉지 않았었고 지금도 가끔 그때 상황이 악몽으로 찾아들고는 한다. 그래서일까 출근길 배웅을 하고 돌아설 때면 찡한 가슴이 될 때가 있다. 서른이나 된 아들을 향한 지나친 마음이라 해도 부모 마음인 것을.

해전이라도 치르는 것 같은 tv화면 속 바다풍경, 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사고의 전쟁 아닌 이 전쟁은 며칠 째이며 그 끝은 언제인가. 울부짖음과 분노로 해결이 될 수는 없어도 그마저도 자제하라거나 자제한다면 산 자와 죽은 자가 다를 게 무엇인가. 마른하늘에서도 날벼락은 내리는가. 어떤 때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마른하늘의 날벼락 이라면 알게 모르게 저지르며 사는 잘못을 반성이라도 하는 천재(天災)로라도 여기지. 캐면 캘수록 줄줄이 엮여 나오는 책임자들의 어처구니없는 부주의와 상상 밖 무책임으로 인한 인재는 분노라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무엇으로 잃은 내 자식, 내 가족을 대신할 것인가. 등에 업은 아기에게 사과 한 개를 통째로 맡기고 침만 꼴깍 삼키면서도 흐뭇한 것이 엄마마음이라고 했는데. 그 뻔히 보이는 바다 속에 갇혀 있는 내 아이를 두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은 이미 나이면서 내가 아니고 나이지만 나일 수가 없으니 몸인들 혼인들 내 것일까.

스무 걸음 안팎의 큰길에 나가 계란 한 판 사들고 왔으니 잠깐이었다. 그 사이 대문이 열린 채 네 살 된 막내가 안 보였다. 위 아랫집 대문을 두드리고 골목골목을 돌아봐도 다른 아이들은 다 있는데 우리 아이를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 애 닳던 한나절을 어떤 고통에 비유할까. 조바심으로 미아신고를 하는데 신고를 받는 파출소직원은 느긋하기만 했다. 그저 조금 기다리면 올 텐데 호들갑이라는 말투에 일던 분노가 울음으로 변해도 그 직원의 건조한 말투는 변하지 않았다. 

싱싱한 각종 식재료를 싣고 다니는 차량은 넓지 않은 도로에 오래 머물지 않아 왔다는 소리가 나면 금방 나가야 만날 수 있었다. 그날도 행여 놓칠까 부랴부랴 서둘러 나갔다 온 시간 불과 몇 분이었으니 그 안에 네 살짜리가 갈만한 곳은 뻔했다. 앞집, 그 앞집, 아니 멀리 간다 해도 조금 도는 골목의 미영이네 집일게다. 그러나 없었다. 집 가까운 어디에도 없었다.

금방 모두 구조되어 한동안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될 줄로 알았다. 처음엔 그랬다.
예서제서 경쟁이라도 하듯 피어나는 꽃을 따라 이야기를 따라 멀고 가까운 곳 나들이하기 좋은 날들. 그 중 뭍에서 생각하는 제주도는 얼마나 멋진 곳인가. 더구나 교복을 벗고 부모의 간섭을 벗어난 홀가분함으로 밤배를 타고 떠나는 현장학습이란 생각만으로도 설레지 않는가. 그 설렘과 기대 속에 승선한 배에서 삶의 끝을 맞으리라고 누가 알았으며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못다 핀 꽃 한 송이가 아니다. 이제 막 봉우리 맺혀 키우는 이, 보는 이, 지켜보는 커다란 꽃밭 하나 통째로 뭉개져버린 것이다. 뭉개진 꽃밭 한쪽에서 그래도 행여 살아나 기적의 꽃 피우지 않을까. 기대와 바람의 기도 손 모아 빌면 정말 어떤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횡단보도 건너 신호등 옆에 우리 아이가 서 있었다. 아침에 없어졌던 아이가 점심때가 한참 지나 저기 저렇게 서 있는데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이 실감될 만큼 신호등의 빨간 불은 오래도 켜져 있었다.
 놀러온 두 살 위 옆집아이와 나를 찾아 나선 것이 어른 걸음으로 2-30분 거리의 대형시장까지 가게 되었던 모양이다. 시장의 갖가지 풍경에 넋을 잃어 배고픔도 잊고 둘이 잡고 있던 손도 놓친 걸 안 것은 한참 뒤였겠지. 땀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은 꼭 길가 버려진 아이 같은데 저는 울지 않았다고 했다. 시금치도 보고 소쿠리도 보고 강아지도 보고 빵 할머니가 빵도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가끔 데리고 다녔던 시장이라 길을 잃거나 친구를 잃었다는 생각도 없이 집을 찾아오는 길이었던 모양이다. 껴안고 퍽퍽 울어대는 나를 따라서 그때야 엉엉 울던 아이, 한나절의 해프닝이었던 그 기억도 생각하면 아직도 이렇게 가슴이 찡한데. 
희생자가족, 실종가족을 위한 기도 밖에는 해 줄게 없어 가슴 아픈 하루가 오늘도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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