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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전에도 구명정은 터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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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전에도 구명정은 터지지 않았다'
  • 윤동길 기자
  • 승인 2014.04.2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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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훼리호 백서(白書)' 분석해보니, 세월호와 판박이

지난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21년 전 292명의 생명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와 거의 모든 면에서 유사했지만 선장의 행동에서만 유일한 차이점을 보였다. 세월호와 훼리호는 21년의 시간차를 두고 기상악화 속 무리한 출항과 운항미숙, 구명보트 불량, 초기신고와 구조, 승선인원 불일치 등 사고발생 당시부터 수습과정에서 판박이처럼 비슷했다. 23일 본보가 지난 1994년 전북도가 발간한 ‘위도 앞바다 서해훼리호’ 백서(白書)를 통해 세월호 사고와 비교 분석한 결과, 다른 점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무리한 출항과 운항 미숙’

▲ 전북도청 제공
서해훼리호는 1993년 10월 10일 사고당시 해상에 돌풍이 예고되자 출항을 놓고 한동안 머뭇거리다 당초 예정보다 40분 늦은 오전 9시 40분 위도 파장항을 출발했다. 당시 위도 앞바다에는 초속 11m의 강풍과 4~5m의 높은 파도가 일고 있었다.

세월호가 짙은 안개에도 불구하고 2시간 늦게 출항한 상황과 유사했다. 기상악화 속에서 무리한 출항이라는 잘못된 출발의 공통점을 지녔다. 서해훼리호에는 낚시객과 관광객, 위도주민 등 362명의 선원과 승객이 탑승했으나 292명이 숨지는 최악의 대형 해난사고로 기록됐다.

세월호는 그 이상의 대참사가 우려되고 있다. 세월호의 사고당시 여객선을 지휘했던 3등 항해사는 여객선 근무경험이 없는 초보였고, 조타수의 경력도 짧았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조류가 빠른 맹골수도 해역에서 과도한 변침이 침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서해훼리호 역시 높은 파도와 돌풍 속에서 회항을 위해 배를 급선회하다 침몰했다. 선박의 방향을 바꿀 때 속도를 줄이고 조금씩 원을 그리며 완만하게 회전해야 하는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세월호의 침몰원인과 같은 상황이다.

 

‘안전 불감증과 부실한 대응’

▲ 전북도청 제공
서해훼리호와 세월호의 또 다른 공통점은 정원과 과적 초과의 안전 불감증이다. 서해훼리호는 회항을 위한 변침으로 배가 45도 이상 우측으로 기울었고, 승객과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복원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침몰했다.

또 서해훼리호는 당시 정원(221명)보다 훨씬 많은 362명의 인원을 승선시켰으며, 화물을 선실이나 화물칸이 아닌 대부분 갑판위에 적재하면서 배의 무게 중심이 위쪽으로 쏠리면서 복원력 상실의 한 원인이 됐다. 세월호의 경우 과적과 무리한 증개축 등이 복원력 상실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서해훼리호는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구명보트가 단 1개만 펼쳐졌으며, 최초신고자도 어민이었다. 21년 전에도 정부의 대응력 부실도 그대로 드러났다. 사고당시 선박회사측은 초기 승선인원을 140명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 362명이었다.

서해훼리호는 사고발생  5분 만에 군산해양경찰서에 신고가 빠르게 접수됐지만 첫 구조작업은 50분이 지난 오전 11시부터 시작되는 등 초기대응이 늦었다. 한편, 세월호 선장은 승객들을 뒤로하고 가장 먼저 빠져나왔지만 서해훼리호 선장은 마지막까지 배를 지키며 신고를 위해 통신실에 있다가 주검으로 발견됐다.
윤동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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