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21년 전 292명의 생명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와 거의 모든 면에서 유사했지만 선장의 행동에서만 유일한 차이점을 보였다. 세월호와 훼리호는 21년의 시간차를 두고 기상악화 속 무리한 출항과 운항미숙, 구명보트 불량, 초기신고와 구조, 승선인원 불일치 등 사고발생 당시부터 수습과정에서 판박이처럼 비슷했다. 23일 본보가 지난 1994년 전북도가 발간한 ‘위도 앞바다 서해훼리호’ 백서(白書)를 통해 세월호 사고와 비교 분석한 결과, 다른 점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무리한 출항과 운항 미숙’
서해훼리호는 1993년 10월 10일 사고당시 해상에 돌풍이 예고되자 출항을 놓고 한동안 머뭇거리다 당초 예정보다 40분 늦은 오전 9시 40분 위도 파장항을 출발했다. 당시 위도 앞바다에는 초속 11m의 강풍과 4~5m의 높은 파도가 일고 있었다.
세월호가 짙은 안개에도 불구하고 2시간 늦게 출항한 상황과 유사했다. 기상악화 속에서 무리한 출항이라는 잘못된 출발의 공통점을 지녔다. 서해훼리호에는 낚시객과 관광객, 위도주민 등 362명의 선원과 승객이 탑승했으나 292명이 숨지는 최악의 대형 해난사고로 기록됐다.
세월호는 그 이상의 대참사가 우려되고 있다. 세월호의 사고당시 여객선을 지휘했던 3등 항해사는 여객선 근무경험이 없는 초보였고, 조타수의 경력도 짧았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조류가 빠른 맹골수도 해역에서 과도한 변침이 침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서해훼리호 역시 높은 파도와 돌풍 속에서 회항을 위해 배를 급선회하다 침몰했다. 선박의 방향을 바꿀 때 속도를 줄이고 조금씩 원을 그리며 완만하게 회전해야 하는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세월호의 침몰원인과 같은 상황이다.
‘안전 불감증과 부실한 대응’
서해훼리호와 세월호의 또 다른 공통점은 정원과 과적 초과의 안전 불감증이다. 서해훼리호는 회항을 위한 변침으로 배가 45도 이상 우측으로 기울었고, 승객과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복원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침몰했다.
또 서해훼리호는 당시 정원(221명)보다 훨씬 많은 362명의 인원을 승선시켰으며, 화물을 선실이나 화물칸이 아닌 대부분 갑판위에 적재하면서 배의 무게 중심이 위쪽으로 쏠리면서 복원력 상실의 한 원인이 됐다. 세월호의 경우 과적과 무리한 증개축 등이 복원력 상실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서해훼리호는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구명보트가 단 1개만 펼쳐졌으며, 최초신고자도 어민이었다. 21년 전에도 정부의 대응력 부실도 그대로 드러났다. 사고당시 선박회사측은 초기 승선인원을 140명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 362명이었다.
서해훼리호는 사고발생 5분 만에 군산해양경찰서에 신고가 빠르게 접수됐지만 첫 구조작업은 50분이 지난 오전 11시부터 시작되는 등 초기대응이 늦었다. 한편, 세월호 선장은 승객들을 뒤로하고 가장 먼저 빠져나왔지만 서해훼리호 선장은 마지막까지 배를 지키며 신고를 위해 통신실에 있다가 주검으로 발견됐다.
윤동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