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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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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보내며
  • 전민일보
  • 승인 2014.02.17 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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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록 농촌지도사

“네 울음소리만이 귀창을 때리고 가마니속 머리만 내밀고 온힘을 다해 빠져 나오려는 네 모습 아른거린다. 네 무덤속에서 서성이며 탈출구를 찾아다니며 네 운명도 모른는 채 모이를 쪼아대는 모습이 애처롭다. 부모 잃은 애아이(AI)처럼 가엽고 측은하다.”

AI 방역초소근무를 하던 어제 저녁, 문득 생각 난 한 편의 시(詩)다. 인용한 시구는 지난 2008년 5월 완주군농업기술센터에서 같이 근무하던 박만기(필명 박이삭) 농촌지도사가 쓴 시 ‘너를 보내며’의 일부다. 그는 닭과 오리 살처분에 다녀온 다음 날 소회를 담아 이 시를 썼다. 이 시가 내게 특별한 것은 나 역시 그 일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날 내 손에 매몰된 닭과 오리는 너무도 건강한 녀석들이었다. 그들이 살처분 대상이 된 이유는 오직 하나 감염개체가 있는 곳으로부터 반경 500미터 안에 살고 있다는 것 뿐 이었다. 더 많은 가금류의 희생을 예방하고 인간에게 감염될 수 있는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불가피한 처분이었다며 애써 자위해봤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오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순간이다.

인간은 가축을 사육하고 식용해왔다. 그 권리를 새삼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 점에서 가축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태어나는 순간 천수를 다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다. 그렇기에 예방적 살처분 대상도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축은 진정 식육의 대상일 뿐인가. 유목민에게 가축은 농경민족의 곡식과 같은 존재다. 농부가 굶어죽을지언정 종자로 쓸 곡식은 입에 대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유목민은 가축을 도살할 때 희생되는 가축을 향해 이렇게 얘기한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네가 죽는 것이 아니라 너로 인해 우리가 살게 됨을 네게 감사한다. ”그들은 희생되는 가축이 최대한 고통 없이 빨리 숨질 수 있도록 도살한다. 그것이 유목민이 그들의 친구에 대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다. 벨기에가 헌법에 규정해놓은 “도살조항” 역시 근본취지는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동물을 사육하고 식용할 권리는 있을지언정 그들을 학대할 권리는 없다. 살아있는 생명을 포대에 담아 생매장해야하는 살처분은 인간과 가축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이 지구상에 인간만 사는 것인가. 인간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생명의 희생도 정당화되는 것인가. 바로 그런 생각이 조류독감(AI)을 만들었다.

언젠가 지구상에 인간의 필요에 적합한 생명체만 살아남는다고 생각해보라. 이 얼마나 섬뜩하고 괴기스러운 일인가. 불행한 것은 우려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 수많은 생명체가 멸종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생명체가 또 하나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있다. 아무 상관없을 것 같지만 멸종과 AI는 동전의 양면이다. 바로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재앙이라는 점에서 둘은 닮았기 때문이다.

공장식 대량사육이 없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값싼 가격에 고기와 우유 그리고 계란을 먹을 수 있었겠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지만 어려움이 있다고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노예가 아니면 농장일은 누가하나’라는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노예제는 없어졌지만 지금 그들이 걱정했던 문제를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가축을 사육해 식용하는 권리와 그들을 학대하는 것이 같을 수 없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은 그 무엇이 되었건 이 땅에 존재할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인간에겐 그 것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지만 인간도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중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오만을 이렇게 경고했다. “지구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인간 없이 끝나게 될 것이다.” 추운 겨울밤 방역초소 근무하는 것이 어렵다고. 렇게 해서 ‘살처분’이라는 공포를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슨 대수겠는가.

박이삭의 시구처럼 너를 보내며 맺는다. 다음 생엔 부디 천수를 다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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