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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 병기총서(兵技總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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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 병기총서(兵技總敍)
  • 전민일보
  • 승인 2014.02.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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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 철학박사·조선어정무예협회이사장

정종이년사월파사병촉삼군부(定宗二年四月罷私兵屬三軍府) - 정종 이년에 사병<私兵: 개인이 군사를 거느리는 것을 말한다. 사병은 삼국시대부터 있었으며, 고려시대에는 사병들의 조직이 왕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까지 발전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려때 도방(都房)이었다. 도방은 공신들의 호위무사가 되었고, 정치에 권력에 깊이 관여했다. 이후 조선시대에 사병조직은 이방원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다.>을 혁파하고 삼군부(三軍府)에 붙였다.

태종조명하륜찬진설(太宗朝命河崙撰陳說) - 태종조에 하륜<河崙(1347~1416) : 자(字)는 대림(大臨), 호(號)는 호정(浩亭)이다. 공민왕 14년인 1345년에 문과에 급제 했다.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의 벼슬에 있을 때 최영(崔瑩)장군의 공요정책을 반대하여 양주(襄州)로 귀양 갔다. 조선 개국 후에 경기도 관찰사가 되어 계룡산건도역사(鷄龍山建都役事 : 계룡산에 수도를 정하는 일)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태조7년(1398) 충청도관찰사 시절에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이방원을 도와 난을 평정했다. 정종2년(1400)에 2차 왕자의 난에도 이방원을 도왔다. 태종이 즉위하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정치제도를 개편했다. 즉 6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도입하여 판서들의 권한을 강화하고 정승들의 권한을 약화 시켰다. 또한 신문고를 설치게 했다. 하륜은 천문 지리에 뛰어났으며, 이첨(李詹)과 함께 동국사략(東國史略)을 편수했고 태조실록(太祖實錄)편찬을 지휘했다. 문집에는 호정집(浩亭集)이 있다.>에게 명하여 진설<陳說 : 진법을 이야기한 책을 말한다. 조선조에 하륜(河崙)이 찬술한 진설이 있고, 하경복(河敬復)이 찬술한 진설과 세조 때 병장설(兵將說)이 있고, 한효순(韓孝純)의 오종진법의 포진(布陣)과 제가병법을 이야기한 진설 등이 있다.>을 찬술했다.

세종원년정취각령(世宗元年定吹角令) - 세종 원년에 취각령<吹角令 : 각(角)은 호각을 말한다. 쇠뿔이나 황동은 등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군대를 호령하고 궁중에 악기로 사용했다.>을 정했다.

출영시취각일통병조응지이각(出令時吹角一通兵曹應之以角) - 영을 내릴 때 호각을 한번 불면 병조는 호각으로써 응답한다.

궐내당직총제상대호군이하각위각령방패등구병갑견수각문(闕內當直摠制上大護軍以下各衛各領防牌等具兵甲堅守各門) - 궁궐 안에는 당직이 총제하며 상대호군<上大護軍 : 상호군 대호군을 말하며, 오위(五衛)에 속하는 무관들이다.>이하 각위와 각령은 방패 등 병갑(兵甲 : 갑옷을 말함)을 갖추어서 각문을 굳게 지켰다.

병조당상수선자기립어전문삼군도진무각이기기립어정소(兵曹堂上受宣字旗立於殿門三軍都鎭撫各以其立於定所) - 병조의 당상관은 선자기<宣字旗 : 군령을 전달할때 쓰는 깃발이다. 청룡 주작 현무를 깃발에 새겼다.>를 받아서 궁전의 문에 세우고 삼군도진무<三軍都鎭撫 : 조선 초기 군무를 관할하던 관청>는 각각 그 기를 정한 장소에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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