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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뇌도지(肝腦塗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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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뇌도지(肝腦塗地)
  • 전민일보
  • 승인 2013.04.03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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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우록(藿憂錄)]은 성호(星湖) 이익(李瀷)이 쓴 책이다. 그런데 제목이 재미있다.
‘콩 잎 반찬 먹는 사람의 근심’이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콩잎을 따 반찬을 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어렵지 않다. 바로 고기반찬을 먹는 사람에 대비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익은 제목을 통해 단순하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실학(實學)이라는 개념이 1930년대 이후 만들어진 것이라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당대 이익의 목소리는 공허했고 사회변혁의 동력으로서도 제대로 규정되지 않았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조선과 자신의 상황을 접목시키며 쓴 정책제안서(政策提案書)이다.
그래서일까. 이익은 책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나는 천한 사람이다. 천한 사람의 근심은 백묘(百畝)의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이란 쉼이 없어 혹 신분을 벗어나 참람한 생각도 하니 이는 필부의 죄이다.”
 자신을 천한 사람으로 규정하면서 신분을 잊고 감히 왕이나 고관대작이 하는 국가의 대계를 논하는 것은 건방진 일이니 이는 곧 필부의 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책을 쓰게 된 이유로 그가 얘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간뇌도지(肝腦塗地)’이다.
 그런데 그 의미가 참혹하다. ‘죽임을 당하여 간과 뇌가 으깨어져 땅바닥에 뒹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는 [곽우록] 서문에서 중국 고사를 인용해 이렇게 얘기한다. “고관대작이 잘못하면 들판에서 참혹하게 죽는 것은 우리입니다. 그러니 목숨이 달린 일에 어떻게 간여를 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비단 옛적 이야기 일뿐일까.
 이익이 생존하던 시기는 병자호란 이후로 큰 전쟁이 없었고 체제는 안정된 모습을 보여줬다. 조선은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했고 성리학적 질서는 더 할 나위 없이 공고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내부적으로는 너무도 강했고 외세에는 너무도 취약했던’체제가 바로 조선이었다. 그러나 암이 평화롭게 진행될 때 파국은 도래하는 법이다. 조선은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이익은 일반 백성의 상황을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평생 눈을 보지 못한 촉(蜀) 땅의 개가 눈을 보면 짓듯, 구멍 속에 살아서 큰물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던 개미가 자신이 떠내려갈 판인데도 편하게 누워있듯’ 그런 것이 서민이라고. 백성은 세련되지 못했다.
 아마추어의 소리가 어설픔에도 그것에 귀를 기울여야하는 것에 대한 전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후학 입장에서 외람되게 덧붙일 것이 있다면 왕과 관료 역시 이익이 지적한 부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당대 조선의 파워 엘리트들이 역사에 져야할 엄중한 책임이기도 하다. 이제 현재로 돌아와 보자. [곽우록]은 지난 시대의 책일 뿐인가.
 우리는 ‘단군 이래 최고’라는 수식어가 식상할 정도로 모든 부분에서 성취감을 맛보고 있는 세대이다. 그런데, 이익이 살던 시대에 가졌던 곽식자(藿食者)의 근심은 여전하다.  
 아니, 근심의 수와 질은 더욱 늘고 깊어졌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최저의 출산률은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을 대표하는 지표로 부족함이 없다. 최후의 분단국으로도 모자라 불신과 증오의 강을 넘어 파국으로 치닫는 남북문제는 어떤가. 이제 통일이 아닌 평화로운 영구분단을 생각하게 만들 정도가 되어버렸다. 계층과 지역 간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리더쉽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이익이 경고하고 있는 ‘간뇌도지’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오늘 다시 읽는 [곽우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사족 하나, 이익은 조선 왕이 일본의 쇼군(將軍)과 ‘카운터파트’가 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불행히도, 그 우려는 빗나가지 않았다.

장상록 / 예산군농업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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